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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지금은 ‘증세’ 시작할 때”…왜 거꾸로 가나
[정창영 칼럼] “지금은 ‘증세’ 시작할 때”…왜 거꾸로 가나
  • 정창영 주필
  • 승인 2022.01.1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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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검증된 사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증세 나서야

분위기 파악 못하는 말부터 꺼내야겠다. “지금 증세 준비할 때 아닌가요?”

조세·재정 전문가들조차 진영 탓인지 소신 탓인지 주장이 갈라진 상황이지만 지금 국가 재정의 경우 국정은 물론 우리 경제의 핵심에 들어있다는 점은 모두 인정한다. 일상처럼 길어진 코로나19 비상상황에다 높아지는 복지 수요,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일자리 등등 정부 재정이 들어가야 할 곳은 산적해 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모두 돈이다.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면 다음 할 일은 분명해진다. 어떻게 재원을 충당하느냐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재원을 충당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고 빠르게 착수해도 국민적 합의를 얻고 시행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돈은 쓰자고 주장하면서 버는 방법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딴청을 피운다면 이는 돈을 쓰지 않겠다거나,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국가가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세금을 거둬 충당하거나 국채 발행을 통해 빚을 내는 방법이다. 세금을 더 거둬 더 쓸 곳에 쓰면 가장 좋지만 세금을 더 거두는 일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도 더디며, 무엇보다 세금 내야하는 국민 저항이 만만치 않다. 자칫 정권의 생명과도 직결될 정도다.

그래서 정권마다 세금을 늘이는 증세 보다 쉽게 빚을 내서 일단 쓰고 그 빚은 다음 정권에 넘기는 방법을 먼저 찾는다. 좋게 보면 비상상황을 헤치고 나가는 고육책이지만 내용을 건조하게 보면 ‘폭탄 돌리기’도 아닌 일종의 ‘폭탄 넘기기’다. 특히 입법부의 예산심의 눈치 보기조차 필요 없는 여대야소 상황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빚을 내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에 이런 조건에서 눈앞에 선거가 있는 상황이라면 빚을 내는 속도는 빛의 속도로 빠르고 거침이 없을 수 있다.

딱 그렇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가뜩이나 고삐 풀렸던 정부의 돈 씀씀이에다 후보들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공약으로 퍼붓고 있다. 오죽하면 선거 이슈로 탈모치료제의 건보지원이 국민적 관심으로 급부상한 상황이다.

국가부채에 대한 논의는 밤을 새워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관리 가능한 재정이라면 부채비율이 높아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과 지금 쓰고 보는 식이면 다음 세대에 빚을 넘겨주는 일이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급한 상황이 도래했을 때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그리고 우려스럽게 맞서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복지를 현 수준으로만 유지해도 45%(2020년 말 기준)인 국가부채 비율이 2030년 75%, 2040년 104%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같은 큰 위기로 재정지출이 늘면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시간은 훨씬 당겨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단지 좁은 의미의 재정 문제만이 아니다. 결국 세금이 해결해야 하는 공기업 부채는 물론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무원·군인·교원연금 등 각종 연금, 건강보험료 등 국가 부담이 최종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하는 분야 곳곳마다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옛날 영화제목을 늘 곁에 두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정 여력 있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은 부작용을 간과한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어느 정부도 세금증가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지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미래로 분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GDP 대비 0.5%씩 세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 포함)를 증가시키고 이를 복지지출 재원으로 연계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나랏돈이 고삐 풀린 듯, 연 실 풀리듯 풀려 나가는 허망한 현실에서 새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대선후보라면 곱씹어 볼 말이다.

정치가 개입하면 결과는 난망일까? 논의가 토론이 되고 토론에 정치와 정략이 개입되는 순간 급격한 변질이 이뤄져 목적과 수단이 헝클어진다.
“천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하고 지도교수와 함께 정확히 6개월 뒤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는 계산을 해낸다. 이들은 곧 닥칠 재앙을 경고하며 백악관에 보고하지만 보고와 동시에 인류 생존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로 변질된다.

멸망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지만 정략과 선거가 개입되면서 대응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결국 충돌할 혜성이 육안으로 관찰되는 상황에 이르지만 정치 진영에서는 사람들의 입에서 ‘돈 룩 업’(Don’t look up, 쳐다보지 말자)이라는 구호가 나오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결론은 멸망에 이른다.” 지난 연말 관심을 모았던 영화 ‘돈 룩 업’의 내용이다.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은 영화였지만 보는 동안 말도 안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접하면서도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실감이 들며,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왔고, 쉽게 적응은 못했지만 우리 주변에 이미 착근해 있는 상황인 것만 같은 익숙함도 느꼈다.

지금 우리는 합리적인 토론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한가하게 토론의 방법이나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할 사안일수록 대화나 토론이 시도되면 곧 정치가 되고 파행으로 치닫는 결과를 곁에 두고 살고 있다. 

대화와 토론이 아닌 악다구니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철저하게 진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죽기 살기’의 비장함이 대화의 자리를 지배하는 현상을 쉽게 접한다. 같은 진영의 주장은 검은 것도 희고, 안 될 것이 없다. 반대의 경우는 설득과 주장을 넘어 증오와 저주, 그것마저 심심하다 싶으면 조롱으로 쉽게 침을 뱉고 덮는다. 

넘쳐나는 온라인과 폭증하는 소셜 미디어 세상을 살면서 어쩌면 그 편리함의 이기를 누리기보다 폐해를 양산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정보와 자료가 넘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시간과 공간과 역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아예 여유 자체가 없다. 정책이 걸음을 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유가 바닥난 상황에서 그럴듯한 포장과 안심을 빌미로 내미는 것이 독선과 진영이다. 정치와 필요는 이를 부추긴다.

방법은 없다. 국민 각자가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것 외에는. 다소 불편하고 불안할지라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나를, 주변을, 세상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는 ‘충돌’일 수밖에 없고 수렁은 깊어진다.

전문가들은 우리 재정이, 세금이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 쏠리거나 가감첨삭 없이 판단하면 방법을 낼 능력도 충분히 있다. 이 맥락에서 제시되는 방안이 지금은 증세를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쓸 곳 많은 재정을 위해 알뜰하게 쓰는 것은 기본이고, 절대적인 부족에 대비해 차분하게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물론 당장은 인기 없는 일이다. 나랏돈이 펑펑 풀리는 현실에서 세금 더 거두자는 주문이 철없는,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맞는 것은 맞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것은 토론의 논제가 아니라 검증된 사실이다. 우리가 불과 몇 년 전에 확인한 ‘사실’이다.  

대통령 후보라면 적어도 국가와 국민이 나갈 비전을 제시하면서 솔직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길로 가야하고, 그래서 돈이 필요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한 결과 이렇게 세금을 더 내셔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가 없다. 피 같은 여러분의 세금은 알뜰하게 쓰고 철저하게 검증받겠다. 약속은 지킨다. 믿고 나를 찍어 달라”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대통령 후보가 없을까.

마치 뭔가 몰래 훔쳐 먹다 들킨 사람들 마냥 유권자만 보면 화들짝 놀라 밑도 끝도 없이 그저 “다 드리겠습니다”만 연발하는 후보만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솔직히 국민은 다 안다.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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