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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2년 새해 아침에 세금을 생각한다
[칼럼] 2022년 새해 아침에 세금을 생각한다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2.01.21 09:2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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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해가 시작되었다. 직업 탓인지 새해 아침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다. 
공자가 깊은 산길을 지나다 화전민 아낙 하나가 세 무덤 앞에서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히 여겨 말을 건넨다. 아낙은 이 산에 몹쓸 호랑이가 살고 있어 얼마 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을 물어 죽였는데 지난밤에는 자식까지 잃게 되었노라고 답한다. 공자가 그렇다면 무서운 호랑이를 피해 마을로 내려가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여인은 손사래를 친다. 마을에는 소문난 탐관이 있어 결코 내려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에 공자가 “잘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그동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괴질로 누구나 두려움 속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정부 당국은 나름대로 대책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냈지만 집값 폭등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집 없는 서민들 삶은 더 어려워지고, 치솟는 세금에 집을 가진 이들도 어려운 가운데 한 해를 보냈다. 새해에는 코로나19가 말끔히 사라지고 세금공포 또한 잠잠해질 수가 있을까. 
3월의 대통령 선거와 6월의 지방선거 등이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해 첫날 아침에 ‘세금’과 관련된 문제들을 생각해 본다. 

 

□ 60조원 역대급 세수 추계 오차, 제대로 된 곳간 지기 역할 아쉽다
나라 경제정책의 근간인 세수 예측이 터무니없이 큰 오차를 보여 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21년 거둬들인 국세가 340조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지난 1월 13일 내놓은 ‘재정동향 1월호’에서 추정했다. 세수 규모가 본예산을 짤 때 예상한 282조7000억원보다 60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다. 당초 예상과 실제 세수 간 오차율은 21% 선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기록적인 오차율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기재부의 오락가락 행태는 더 기가 막힌다. 기재부는 작년 7월, 2차 추경 편성 때 초과 세수를 31조6000억원으로 추정했다. 당시에도 ‘엉성한 세수 추계’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초과 세수는 10월에 42조원, 11월에는 51조원으로 다달이 불어나더니 이제 60조원이란 잠정집계 수치에 이른 것이다.
세수 추계는 예산 수립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다. 걷힐 세금의 규모를 고려해서 씀씀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상 세수를 낮게 잡아놓으면 정작 예산을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엉터리 세수 추계는 ‘대선 전 추경’의 빌미를 주고 말았다. 여당은 벌써부터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며 생색내기 모드에 돌입했다. ‘2월 추경’에 반대한다던 홍 부총리도 어느새 ‘추경 편성 불가피’ 쪽으로 선회했다. 곳간 지기 임무를 부여받은 기재부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딱한 일이다. 
이번 기회에 세수 추계의 투명성과 전문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 기재부의 추계 모형과 근거를 공개해 외부 전문가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국회에서도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과 함께 엮여버린 세금 제도
 이 정부 들어 수십 차례 발표된 부동산 정책에 세금 제도가 주연급으로 동원됐다. 주택 공급이나 금융 정책보다 세금이라는 단칼을 정부가 중용했고, 이에 보유세와 거래세를 징벌적 수준으로 올렸다. 주택을 팔 때 차익의 최대 75%까지 양도세를 물도록 했다. 세금이라기보다는 벌금 수준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 4명 중 1명은 부자세인 종부세 부과대상이 됐다. 
부동산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를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중 주택은 주거공간으로서 특성도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측면도 매우 강하다. 집값이 1년 동안의 봉급과 비교해 너무 과도하게 올랐던 최근의 상황은 많은 사람에게 박탈감 내지는 무력감을 안겨 주었다. 무주택자에게는 집 없는 설움과 앞으로도 집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비애감을 느끼게 했고, 1주택자도 무주택자의 경우보다는 덜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의 폭과 여러 세금 부담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 정책에 덩달아 세법 규정이 자주 바뀐 것은 더 큰 문제다. 최근 불거진 양도세와 보유세 완화 움직임도 그렇다. 당정은 그간 부동산시장 급등 책임을 다주택자 등 집 부자에게 돌리며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 비율 등을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로 압박해 왔다. 그러더니 지난달 20일엔 난데없이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보유세 완화 방침으로 선회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 부담 상한 조정과 내년 종부세 산정 시 올해 공시가격을 활용하는 것, 고령자 종부세 납부 유예제도 등의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정책의 성공 여부도 문제지만 세금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만다.
근로소득에 비해 부동산에 대한 이익은 세금으로 더 걷는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찬성이다. 그러나 징벌적으로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 취득단계에서 적용되었던 세금 제도가 처분단계에서 바뀌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예측 가능성을 흔드는 것은 세금 제도 운용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탕발림 대선공약 감별을 위해 유권자는 눈 부릅떠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장밋빛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이 폭발적 호응을 얻고, 여기에 고무된 후보는 임플란트 건보 혜택을 지금보다 늘리겠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최소 1인당 총액 10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도 추경을 통해 설 전에 지급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또 다른 후보는 한술 더 떠 재난지원금 50조 지출과 병사 월급을 1인당 200만원씩 주겠다고 한다. 
국민의 아픈 데를 긁어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노력은 정치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이 없듯 나라에서 주는 것도 공짜가 없다. 건보 재정으로 탈모약을 먹고 재난지원금이라고 펑펑 쓰고 나면 결국 세금을 통해 내 주머니에서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선심성 현금 복지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했던 그리스 정권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 계층 무상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11년간 장기 집권했다. 이 사탕발림 정책으로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에서 지원받은 15억4000만 유로(약 1조9000억원)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재정을 남발하면 결국 세수 확대가 필요하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돼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된다. 정책을 제시할 때는 소요예산을 말하고 확보할 방안도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이것을 따져보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 몫이다.
일상처럼 길어진 코로나19 비상상황에다 높아지는 복지수요,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일자리 등등 정부재정이 들어가야 할 곳은 산적해 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모두 돈이 있어야 해결될 문제다. 
이처럼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한다면 방향은 뻔하다. 어떻게 재원을 충당하느냐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재원을 충당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고 빠르게 착수해도 국민적 합의를 얻고 시행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돈은 쓰겠다고 주장하면서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딴청을 피운다면 말로만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금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윤활유나 다름없다. 따라서 세금 부담액의 크기에 따라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 공동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기꺼이 내는 납세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받아 마땅하다. 
단 한 푼이라도 세금을 내는 국민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소득 격차, 자산 격차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소득이 많은 사람,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에게도 세금 당국이 베풀어야 할 역할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 세금을 낸 것이 있다면 형편이 안되는 지금 세금으로 무엇인가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느끼게 해주는 일 말이다. 내가 낸 세금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새해 세금 고민은 끝이다. 
다시는 가정맹어호 같은 고사는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경영학박사
•수필가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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