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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전원일기’ 다시보기 아니, 다시보지 않기
[정창영 칼럼] ‘전원일기’ 다시보기 아니, 다시보지 않기
  • 정창영 기자
  • 승인 2022.03.02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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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부조화는 세대 구분 없는 전통적 화두
세대갈등 해소는 본질과 균형 조화롭게 풀어가야"

아련한 기억과 함께 익숙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화면에 달린 제목처럼 ‘우리 마음속 영원한 고향, 전원일기’를 다시 접한 느낌은 일종의 편안함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대략 25년 전 쯤 방송됐던 전원일기의 오래 된 재방송을 보게 됐고 그저 옛 생각에 잠시 멈췄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묘한 분위기에 빠지는 나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요즘 드라마에서 접하기 어려운 ‘공감’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면서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을 느낀 것이다. 늘 복잡한 뉴스의 홍수 속에서 가끔 접하는 드라마나 가요 등 소위 ‘요즘 문화’는 왠지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정서적 공감이나 편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서는 ‘저래도 되나?’를 되 뇌이면서 가시지 않는 어색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드라마나 가요 등 소위 요즘 문화와는 자연 거리가 있던 터였다.

이런 현실에서 익숙한 정서에 불씨를 지핀 것은 전원일기였다. 배경이 촌스럽고 세트 구성이나 화질은 지금과 비교하면 형편없었지만 일단 드라마의 핵심인 줄거리에 공감이 ‘확’ 일었다. 흔들리지 않는 사필귀정 스토리에 무엇보다 상식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줄거리는 안정감 그 자체였다. 착한 마음으로 옳은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결과를 얻고, 잠시 욕심을 내거나 궤도를 이탈한 생각은 대가를 치른다. 무엇보다 너무 부끄럽지 않는 선에서 당사자가 이해하고 인정하며 생각을 바로잡는 마음 푸근한 귀결에는 앞선 긴장이 풀리며 편안함마저 느낀다.

주변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틈만 나면 채널을 돌리며 오래된 드라마 전원일기를 찾았던 이유다. 너무 오래된 드라마여서 당시 봤던 기억은 ‘전혀’ 없지만 그냥 보고 있으면 지금 바로 옆에서 이뤄지는 일처럼 정서적 공감이 짙어갔다.

물론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 대목은 너무 많았다. 어쩌면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며 연속극의 근간을 형성하는 대가족 김 회장(최불암 분)댁 가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설정인 것은 물론이고, 지금의 양성평등 개념을 적용하면 이 드라마는 ‘접근불가’ 딱지를 받아야 마땅할 정도다.

시부모에게 말대꾸하는 며느리가 남편에게 ‘따귀’를 맞고도 말미에 ‘어머니 죄송해요’가 나오고, 부부 사이에 기선을 잡겠다고 남편이 부인이 들고 온 밥상을 걷어차는 장면도 대수롭지 않게 양념 정도로 이어지고 있다.

힘든 농사일을 부부가 함께 하고 돌아와서 허둥지둥 정신없이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것은 100% 아내 몫이고, 식사 후에 남편이 설거지를 돕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드라마의 변하지 않는 구성이고 배경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보는 사람이 ‘저래도 되나’ ‘저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되물을 정도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 그렇지, 그랬지’를 느끼며 오히려 편안한 마음을 느끼는 묘한 혼돈도 함께했다.

따지고 보면 오래 전 일도 아니고, 불과 이십 몇 년 전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살던 그 시절 그 때 이야기다. 드라마 특성상 다소 미화되고 과장된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얼마 전 우리 부모님, 형제자매, 이웃,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이 살던 그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래된 드라마 전원일기에 모처럼 공감을 했고, 굳이 전원일기가 아니더라도 그 시절 함께했던 드라마나 가요 등 그 어떤 것을 접했더라도 비슷한 감성적 공감이 일었을 것이다.

‘익숙했던 것을 그리워해라. 그래서 사람이다’의 연장선일까?

카페에서 ‘라떼’를 주문할 때면 괜히 ‘나때’(나 때는 말이야~)의 의미가 먼저 스쳐간다. 이렇게 변화를 외경스럽게(?) 인식하며 시대와의 조화를 위해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말 수를 줄이며 점잖게, 조용히 살다가도 친구들이나 비슷한 또래,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동료를 만나면 ‘시대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라는 곧 절단날 것 같다. 이렇게, 이런 정신상태로 가다가는 성장 동력이 곧 끊기고 글로벌 경쟁시대를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게 이뤄 놓은 오늘의 이 결과물이 곧 허물어질 것이 분명하다.

단지 일의 성과나 결과물만이 아니다. 심각한 것은 내면 외면에 산재한 갈등이다.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 온 ‘성공세대’들과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성공할 세대’들 간 세대갈등은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이유와 실증 경험이 서로 확연해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래서 그나마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무관심과 무표정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관심은 엄청 많은데 잘 표현하지 않는다. 갈등이 노출되거나 표현되는 것이 싫어 못 본 척 한다는 것이 더 맞다.

요즘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MZ 세대’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2019년 말 기준으로 170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34%에 이른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모바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며 최신 트렌드에다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SNS를 기반으로 각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소비 주체로도 부상하고 있다. 당장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들의 표심이 대세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세정가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경험 많은 세무 베테랑들은 전 현직 가릴 것 없이 MZ세대 국세공무원에 적응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조직 중심 사고가 약하고 종합적 판단 대신 주관적 공정만 강조해 전체적 관점에서 일처리가 어렵고, 합리적인 납세자 요구도 규정만 따져 일축해 세무조사 책임자도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토로한다.

특히 이들의 강한 개성은 직장 내 구성원 관계에서 소위 ‘그립(Grip)감’을 떨어뜨리고, 납세자의 정당한 애로 건의를 부정청탁으로 경계하는 성향도 있어 경직성 우려도 낳고 있다.

베테랑 세무대리인 몇이 모인 자리에서 모처럼 실무 이야기가 나왔다.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다가 결국 ‘요즘 직원들’로 돌려졌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세무 달인’들이어서 일방적인 난사(亂射)만은 아니었고, 나름 균형과 경험을 강조하면서 발언을 이어갔다. 다만, ‘나라’와 ‘납세자’ 입장 모두를 안아야 하는 세무대리인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별 이득도 없이 납세자를 불편하게 한 직원의 대응이 결국 ‘세대의 대상’이 됐다.

꽂히는 한마디가 남는다. “봐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당하게 매기돼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요즘은 납세자들도 훤히 알고 있다.”

시대(時代)와의 부조화(不調和)는 세대 구분 없이 끊이지 않고 내려오는 일종의 화두다.

세상과 주변은 늘 변하고 있고, 자신도 변해 왔다고 하지만 철학에서의 변증법처럼, 숨바꼭질처럼 비판과 비판대상은 어김없이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꼰대를 비판했던 내가 꼰대가 됐고….”는 이제 불변이고 정설이다.

몰론 중요한 것은 본질과 균형이고 이를 잊히지 않기 위해 나름 각별한 신경을 쓰지만 우리는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형상기억합금처럼 조건만 맞으면 익숙했던 경험, 본질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마치 우연히 전원일기를 보고 공감하는 것처럼.

물론 현실에서는 피해 갈 수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갈등은 존재하고, 이를 풀기 위해 ‘라떼’를 주문하면서도 조심하는 것이다.

결국 전원일기를 보면서 공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이참에 전원일기를 다시 보지 않기로 했다.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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