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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무사들, ‘임의규정’ 해석 못하는 자격사로 낙인찍힐 셈인가
[칼럼] 세무사들, ‘임의규정’ 해석 못하는 자격사로 낙인찍힐 셈인가
  • 이대희 기자
  • 승인 2023.05.22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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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이사회 부결에도 후보자 소견발표 없앤 세무사회 선관위의 결정을 보며
이대희 편집주간

한국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1일 선거규정을 해석하면서 6월 세무사회장 선거의 후보자 현장 ‘소견발표’를 없애버렸다. 해당 조항이 ‘임의규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자칭 최고 세법전문가라 자부하는 1만5천 세무사 집단에서 이뤄진 규정 해석인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세무사회 선거규정 제9조 제6항은 ‘위원회는 각 지방세무사회별로 선거일까지 합동으로 1차에 한하여~(중략)~ 후보자가 소견발표를 하게 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여기서 ‘~하게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임의규정이어서 선관위 직권으로 소견발표를 없앴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국어사전은 임의규정(任意規定)을 ‘법률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적용하지 아니할 수도 있는 규정’이라고 돼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강행되는 것이 ‘강행규정(强行規定)’인데 반해 법률행위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 또는 변경되는 것이 ‘임의규정’이다.

즉, 임의규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적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또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대비해 그 공백부분을 메우거나 또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분명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임의규정이기 때문이다.

선거규정 제9조 6항에서 적용 대상인 ‘당사자’는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세무사회장, 윤리위원장, 감사 등의 후보들이다. 넓게 보면 유권자인 세무사회 소속 1만5천 세무사도 당사자다. 따라서 선관위가 소견발표를 없앨 것인지 여부는 선거 당사자인 후보들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즉, ‘이번에는 소견발표를 하지 말자’는 후보자들의 의견이 있을 경우에만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 선관위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국회의원 총선거 등에 앞서 여야가 선거제도 변경과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특히 세무사회 임원선거 후보자 등록은 5월 31일~6월 2일이어서 선관위가 소견발표를 없애기로 결정한 5월 11일은 ‘당사자’인 후보자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선관위 결정 이틀 전 한국세무사회는 상임이사회에 소견발표 폐지 등을 담은 선거규정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지방회장들과 상임이사들의 반발로 부결됐다. 상임이사회의 결정을 이틀 후 선관위가 뒤집은 것이다. 회원을 무시한 것은 물론 회칙과 규정의 해석 기관인 상임이사회 권능조차 짓밟았다.

임의규정이고, ‘상대 후보자 비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직권으로 없앨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해명인데, 임의규정의 뜻을 모르거나 왜곡되게 해석한 무책임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세무사들은 납세자 위임을 받아 업무를 수행할 때도 세법의 ‘임의규정’에 대해 선관위가 해석한 것처럼 납세자에 불리한 쪽으로 처리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납세자에게 도움이 되고, 불복의 경우는 승소해야만 당당하게 수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납세자에 유리한 쪽으로 임의규정을 해석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흔치는 않지만 세법에도 임의규정이 있다. 국세기본법 제6조(천재 등으로 인한 기한의 연장)가 그 중 하나다.

‘관할 세무서장은 천재지변이나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 중략 ~ 정하여진 기한까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나 납세자가 기한 연장을 신청한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조항을 해석하면서 납세자 의사도 묻지 않고 “임의규정이기 때문에 기한 연장이 안된다”고 작위적으로 결정해 납세자 권리를 침해하고 곤란에 빠뜨릴 세무사가 과연 있을까. 최소한의 법 지식과 양식을 갖춘 세무사라면 절대 그렇게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간 업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관위의 작위적 임의규정 해석으로 후보자 소견발표를 없앤 것에 1만5천 세무사들은 의문을 가지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돈벌이 되는 세무업무 처리의 경우와 자신들이 속한 단체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의 ‘임의규정’ 해석은 다르다고 판단하는 걸까.

임의규정은 ‘법률 당사자 의사' 따라 적용하는 것...선거에서 당사자는 '후보자'

"세무업무 처리할 때도 납세자에 불리한 쪽으로 세법의 임의규정 해석할 건가"

선거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이 벌어졌는데도 대다수 세무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마치 다른 단체의 일인 양 꿀 먹은 벙어리다.

공개적 반발은 ‘회원을 무시한 선관위 월권’ ‘세무사회장의 선거중립 위반’을 지적하며 회장에 입장문을 전달한 김겸순 감사와 구재이 세무사, ‘시대 역행의 세무사회 선거’를 꼬집은 이종탁 세무사의 칼럼 정도가 전부다.

권리가 침해되는 결정에도 유권자인 세무사들이 항의 한마디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잠잠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참으로 이상한 자격사단체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거판이다. 10년 전 세무사회장 임기와 관련, ‘중임=연임’으로 해석하는데 표를 몰아줘 특정 전직 회장의 3선을 보장해줬던 사례에 비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듯하다.

‘소견발표’는 정치권이나 단체 등의 선거에서 예외 없이 실시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초등학생 반장 선거에서도 후보자 소견발표는 필수다. 따라서 소견발표를 못하게 막는 것은 후보자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인 세무사 회원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선관위의 횡포다. 이런 결정을 방조하거나 조장한 한국세무사회도 공범이다.

소견발표 조차 못하는 ‘깜깜이 선거’를 유도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 가까운 후보에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들기 위함 아니겠는가. 10년 이상 특정인과 특정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며 세무사회를 쥐락펴락 하는 것도 이런 잘못된 선거규정과 편파적인 선거관리가 지속된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세무사회 선거규정은 회직자와 현직에만 유리한 면이 많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소견발표까지 없애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하는 횡포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2년 전 선거와 관련한 고소·고발로 전현직 세무사회장 등이 검찰에 송치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선거 보이콧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것 아닌가.

집행부와 회직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규정과 특정 세력 위주의 선관위가 ‘검열’한 내용 안에서만 하는 소견발표도 문제다. 하지만 이마저도 없애면서 치르는 선거로 어떻게 능력 있는 회원 대표를 뽑겠는가. 현장에 불러내 투표하게 하려면 최소한 후보자 정책과 리더로서의 인성을 검증할 수 있는 소견발표는 듣게 해야 할 것 아닌가.

후보와 유권자의 소통 창구인 소견발표를 없애려면 현장투표 대신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변호사협회와 공인회계사회 등 많은 전문자격사 단체들이 실시하는 전자투표를 유독 세무사회만 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선거부터 당장 도입해야 한다는 회원 요구를 회원단체인 세무사회는 시대흐름에 맞게 수용해야 한다.

모든 기관과 단체들이 선거에서 준용하는 공직선거법은 ‘금품제공’과 ‘허위사실 유포’를 제외한 모든 선거운동을 보장하고 있다. 공청회나 토론회, 인터뷰 등은 고사하고 소견발표 조차 없애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어떻게 세무사업계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임의규정이라 소견발표 없앴다고? ‘세무사는 임의규정도 제대로 해석 못하는 자격사’로 납세자들에 알려지면 그 후과(後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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