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헌법재판소(“헌재”)는 배우자의 상속권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00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해 법률혼만 인정하는 이 조항의 ‘배우자’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행 민법 제1003조 제1항에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법정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혼인의 성립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812조 제1항에서 혼인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것으로 규정하여 민법상 배우자는 법률혼에 의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상속인을 객관적 기준에 따라 파악함으로써 상속권을 명확히 하겠다는 실정법의 규정과 그동안 우리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사실혼에 대한 인식이 썩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헌재의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상 상속권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은 한편으로 이해할만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사회에서 결혼을 포함한 기존 제도들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바뀌고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한 결혼기피현상과 저출산 문제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혼인형태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혼인을 인정해서라도 이를 타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이번 헌재의 결정은 아쉬운 점도 있어 보인다.
배우자의 상속권과 관련된 이번 헌법소원에서 청구인은 사실혼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상속인을 객관적 기준에 따라 파악함으로써 거래의 안전 등을 도모하겠다는 상속권조항의 입법목적은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게 되었다면서,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상속권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실혼 배우자와 법률혼 배우자는 상속권의 인정 필요성 등에 있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 양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속권 조항은 법률혼 배우자에게만 상속권을 인정함으로써 생존 사실혼 배우자에게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이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14년 8월 28일 선고한 2013헌바119 결정의 상속권조항 관련 선례를 인용해 상속권조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지 아니하여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상속권)을 침해하지 않고, 자의금지원칙을 위반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즉 이 사건 법률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되기 때문에 이 사건 법률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법률혼주의를 채택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제3자에게 영향을 미쳐 명확성과 획일성이 요청되는 상속과 같은 법률관계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법률혼만 인정하는 상속권조항에 대한 헌재의 이번 합헌 결정은 최근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결혼기피현상과 저출산문제로 인해 국가소멸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너무 안이한 현실인식이 아닐까싶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정도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더라도 우리나라의 연도별 혼인건수가 해마다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과 육아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20대~30대가 늘어나고 있고 많은 청년들이 이제 결혼은 개인의 선택사항일 뿐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전통적인 기존의 결혼형태를 고수하지 않고 ‘계약결혼’이나 ‘동거’를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실제로 혼인생활은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이른 바 ‘사실혼’ 상태에 있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결혼기피현상과 저출산 문제, 그리고 변화하고 있는 다양한 혼인생활 등을 감안할 때 사실혼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함에도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CNN방송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면서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과 동성결혼의 불인정 등 비전통적 커플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이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전통적인 결혼 제도가 아닌 비혼, 이혼, 동성혼 등 다양한 가구의 구성형태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재의 인식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언급했다고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프랑스의 경우 2021년 기준으로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 인구 증가율 1위와 합계 출산율 1위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 배경에는 동성·동거·미혼가정의 인정 등 전통적인 혼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각종 제도와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에도 최근에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맞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는 동거커플과 싱글맘도 법적 안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례들이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혼인형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려는 것은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헌재 결정에서 헌법재판관 개인 의견으로 제시된 것을 보면, 입법자에게는 생존 사실혼 배우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관하여 넓은 입법재량이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입법을 통해 생존 사실혼 배우자에 대하여도 일정한 경우 재산청산 내지 부양 등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되 우리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법적안정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이나 스웨덴, 뉴질랜드 등 여러 국가들에서 사실혼 내지 이에 준하는 관계가 일방의 사망으로 해소된 경우 생존한 당사자에게 재산청산 내지 부양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도 사실혼이 일방의 사망으로 종료된 경우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청산 내지 부양에 관한 권리가 적절히 담보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소수의견처럼 사회변화상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실혼에 대한 조속한 입법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현) 세무회계 조이 대표세무사
• 현)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법무서비스지원단 전문위원
• 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우회 회장
• 전)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
• 국립세무대학 내국세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호주 시드니대학교 로스쿨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