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沈載亨(本社 顧問) -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공평과세는 곧 세무행정의 생명이라는 등식도 이래서 성립한다.
국세청 당국이 추구하는 과세행정 품질개선도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 아닌 공평과세 구현에 있다. 그러나 공평과세 실현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숨 넘어 가는 생명이라도 구 했나
지금은 가공(可恐)할 정도의 국세청 전산망이 시퍼렇게 작동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현실은 근거과세 포착이 어려운 업종과 이를 기피하는 납세자 등 취약분야가 적지 않게 상존한다. 수평적 공평성도 미흡하려니와 수직적(垂直的) 공평에는 더 더욱 갈 길이 멀다.
근로소득자와 자영사업자간의 세 부담 형평성 시비가 아직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공평과세 한답시고 마구잡이로 조사행정의 칼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직은 ‘걸면 걸리는’게 우리의 납세환경이고 보면 자칫 또 하나의 ‘과세 불공평’을 만들어 놓는 우(愚)를 범한다. 그러기에 기업들은 세무조사에 걸려들어 세금을 얻어맞으면 운수 탓을 하게 된다.
몇해 전 일이다. 평소 국세행정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던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세무조사를 받고 적지 않은 규모의 세금을 추징당한다.
그런데 그 후 이 중소기업 사장은 뜻밖에도 ‘국세행정의 열렬한 팬’이 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세무처리의 잘잘못은 물론 경영전반에 걸쳐 세심한 진단까지 해 준 조사요원에게 감동을 한 것이다.
그 사장, 많은 것을 배운 만큼 고액 수강료 내는 셈 치고 세금을 기꺼이 납부했다는 얘기다. 노련한 조사요원 한사람이 막연한 불신감을 갖고 있던 한 납세자에게 국세행정의 신뢰감을 되살려 준 값진 케이스다.
세무조사 중지 ‘내세울 감’이 못돼
이렇듯 납세자들은 백 마디 천 마디의 ‘요란한 구호’ 보다는 단 한건의 진정한 행정서비스를 더 소중히 여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의 조사행정은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납세기업에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중견 기업 관계자들은 조사요원들의 변모된 매너를 자주 입에 올린다. 쟁점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측의 논리를 관심 있게 귀 기울여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조사요원들의 성숙된 의식은 조사행정의 신뢰성 회복에도 큰 몫을 한다는 평가도 곁들이고 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국세청의 꾸준한 세정 개혁 노력이 뿌리를 내리는 모양이다.
이런 차제에 국세청은 얼마 전 모처럼만에 ‘빅뉴스’(?)를 언론사에 제공했다. 보도 자료를 통해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이 첫 세무조사 중지명령을 내렸다고 떠들썩하게 발표를 했다.
이번 조치가 국세청장에 대한 사전 보고나 본청 조사국장의 협의 없이 납세자보호관의 ‘독립적’ 판단임을 애써 강조했다. 일부 언론은 납세자권리보호 시대가 실질적으로 열리는 획기적 조치라고 격찬을 해 댔다.
그러나 국세행정 발전을 염원하는 국외자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례는 작금의 국세청 개혁성과를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가 된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지나친 홍보는 개혁성과 되레 훼손
어찌 보면 병(病)주고 약(藥) 준 격인데 마치 숨 넘어 가는 납세자 생명이라도 구한 양 과잉 홍보를 해 댔다. 아무리 좋게 넘기려 애를 써도 자꾸만 목에 걸린다. 사실 납세자들은 과세행정에 있어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이 없다.
세무조사가 중지됐다하여 영구 배제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준법(遵法)세정(?)에 자유로운 납세자가 없기 때문에 언제 화(禍)를 당할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세무조사 중지 사건은 그리 ‘내세울 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국세행정이 지나치게 과묵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요란을 떠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너무 튀면 분식세정(粉飾稅政)(?)이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제 “세무행정은 조용할수록 좋다”는 세정가의 오랜 격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양이다.
가급적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던 세정의 보수성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돼가고 있다. 참으로 톡톡 튀는 감성세정으로 바뀌고 있다.
저작권자 © 日刊 NTN(일간N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3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