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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올드보이들의 열정"
"퇴직, 올드보이들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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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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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N칼럼] 정창영 (NTN 편집국장)
   
 
 


60대에 막 진입한, 번쩍 번쩍 이마를 드러낸 몇이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조금은 시끄럽고 소란하다. 밖은 장맛비가 박자를 맞추며 두들겨 댄다. “그거 말이지 내가 해 놓은 거야. 첫 발령 받아서 갔는데 엉망이더라고.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본부에 SOS를 쳤지. 예산 좀 달라고. 서장 처음 나와서 보니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고쳐야겠다. 아 그랬더니 체면 생각해서 도와주더라고. 이 친구하고는 전에 조사국에 같이 있었거든. 그래서 일단 해 놓고 본거야.”

“막말 같지만 앞에서 황당하게 해 놓고 갔더라고. 인사 때가 됐는데 직원들이 도대체 믿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딱 기준을 먼저 공개하고 그 기준대로 배치를 했지. 깜짝 놀라더라고. 지금도 기억해 울먹울먹하던 여직원을. 정말로 사심 없이 했다.”

그들의 대화는 단지 자찬(自讚)을 넘는다. 그 근본은 국가를 위해, 공직자로서 정말로 소신을 갖고 일 했던 기억들을 꺼내 놓고 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했던 자신만의 앨범을.

“야, 말도마라.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앞이 캄캄해. 무슨 놈의 관운이 그러냐고. 국장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할말이 없데. 다음에 나가라고 그러더라고. 어떡해 내가 먼저 죄송하다고 했지. 염려마시라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고. 그러고 2년 더 있다 나갔잖아. 아이구, 참....”

국세공무원으로 평생 일해 온 이들은 그래도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갖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지만 열심히 일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무서장을 했으며, 나름대로 그 자부심이 상당하다. 길을 걸을 때도, 사람이 모인 자리에 나갈 때도 ‘국세청 출신’이라는 프라이드가 늘 가슴에 남아 있다. 세무사로 제2의 세무인생을 걷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경조사는 신념으로 챙긴다.




만감이 교차한다. 연단에서 보는 직원들의 표정이 너무 정겹고 낯익다. 이제 정말로 떠나는구나. 국세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지내 온 길과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일이 하나하나 소개된다. 그때마다 당시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 내가 그랬었지’ 눈을 뜨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감고 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퇴장이 결코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면서 다가 온, 어쩌면 자연스럽게 다가온 결별인지도 모른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살았는데 시간까지 정해진 퇴직에 대해 이처럼 준비가 없었을까. 낯설기만 하다. 정말로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문다.

한 숨 못자며 고치고 고친 퇴임사를 꺼낸다. 시간까지 계산하며 작성한 퇴임사이지만 막상 그냥 읽자니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솔직한 심정을 섞어 ‘퇴임의 변’을 한다. 의연하자고 그리 다짐했건만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 것은 한평생 살아 온 터전이 세정가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운명의 시계바늘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다가 설 곳에 선 것이며, 이를 곳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박수 받으며, 꽃다발 가슴에 안고 퇴장하는 것은 꼭 이루고 싶었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대~한민국’이 거리를 뒤덮은 6월. ‘굿바이, 국세청.’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참 ‘어렵다’를 실감한다. 경기는 어렵고 경쟁은 치열하고 이중고를 겪는다. 새벽녘에 많은 생각을 하는 일이 이제 습관이 됐다. 지우고 다시 쓰고 머리 속은 복잡하다. “그래 잊자, 좀 잊어도 큰 일 나지 않는다”고 자주 되뇌이지만 생각뿐이다. 광야에 혼자 서 있는 듯 허허롭다.

생각이 자꾸 가라앉는 쪽으로 몰리자 이내 오기가 생긴다. 어떻게 살아 온 인생인데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구나. 안되는 것도 되게 하며 세상에 섰는데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일이다. 다짐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울 때 스스로를 보듬게 하는 보약같은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공기처럼 호흡하며 지내는 친구들이다. 현직 국세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고락을 같이한 이른바 국세동우다. 다른 친구들도 많지만 이 모임에만 나서면 화제가 만발이다. 젊어 한 고생 이야기부터 사는 이야기까지 열정이 식지 않는다. 전설처럼 간직한 30대 패기에 찬 근무경험담은 2002년 월드컵 장면처럼 꺼내도 꺼내도 지겹지가 않다. 들어주고 박자를 맞춰주는 친구가 정겹다. 올드보이들의 무용담이 소줏집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지만, 흘겨보는 사람들이 없다.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당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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