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통보받음에 따라 KB금융그룹의 '인수합병(M&A)을 통한 재도약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를 경합끝에 NH금융지주에 내준데 이어 야심차게 준비해온 LIG손해보험 인수계획마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새 사업 진출로 타개하려던 경영전략에 차질이 생긴다면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을 둘러싼 내홍의 문책문제가 불거져 KB금융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LIG손보 인수 유력후보에서 후순위로 밀리나
KB금융지주는 지난 3월말 주주총회에서 LIG손해보험 인수계획을 공식화한 뒤 두 달여 간 정성을 쏟았다. 임 회장은 매주 임원회의에서 준비상황을 체크했고 경쟁업체보다 많은 60여명의 인력을 실사작업에 투입하기도 했다.
더욱이 LIG손보노조가 공개적으로 KB지주에 힘을 실어주면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각광을 받았다.
예비입찰 때 제안가격이 4200억∼4300억원으로 가장 낮았던데다 임 회장이 '무리한 인수는 지양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점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인수 의지가 강했던 만큼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LIG손보 입찰 당일 불거진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 변경계획에 따른 내분이 발목을 잡았다.
내분이 은행과 지주사간의 힘겨루기로 치달은데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시스템을 문제삼아 특별검사에 착수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수주체인 KB금융지주에 대한 징계가 경징계(기관경고)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보험업법상 기관경고를 받은 보험사는 같은 업종 M&A가 제한을 받지만 KB지주는 보험사가 아니어서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련업계에서는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가 LIG손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게다가 KB지주가 내홍사태로 혼란에 빠진 사이에 주관사인 골드만삭스의 가격 수정 과정에서 롯데는 배팅금액을 5400억원에서 6500억원까지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KB금융지주의 LIG손해보험 인수계획은 물건너 갔다"는 말이 나돈다.'
◇ 그룹 포트폴리오 전략 전면 수정 불가피
KB지주가 LIG손해보험 인수에도 실패한다면 3번째 좌절이다.
KB는 어윤대 회장시절 ING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사외이사진과의 마찰로 중도에 포기했고 작년말에는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우투증권+우리아비바생명보험+우리금융저축은행) 인수전에서는 NH농협지주에 고배를 마셨다.
KB금융은 우투증권 개별 입찰에서 1조1500억원의 최고가를 적어냈지만, 생명보험·저축은행 인수를 사실상 거부해 '패키지 일괄 매각' 원칙에 따라 배제됐다.
KB가 이처럼 수년째 비은행 분야 M&A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은행부분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그룹 매출의 83%를 은행에 의존하는 현 구조하에서는 그룹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항간의 예측대로 KB지주가 이번에 LIG손보 입찰에서 또한번 실패한다면 그룹 성장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는 동시에 KB지주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KB지주는 내년 이후 매물로 나오는 대우증권 등의 인수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지주 관계자는 "지금 그룹 전략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 CEO리스크도 불거질 듯…총체적 위기 가능성
소명 등의 절차를 거쳐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처분이 경징계로 끝나더라도 KB내의 위기론은 잦아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두 수장 간, 국민은행 이사회와 경영진의 사이가 이미 봉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정상적인 경영환경이 어려운 만큼 CEO리스크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돈다.
노조 관계자는 "CEO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며 "실추된 국민의 신뢰, 땅에 떨어진 조직원의 사기를 살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두 수장에 대해 퇴진을 요구해온 노조측은 토론회를 열고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빠른 행보를 보였다. 징계수위가 결정되면 신임 투표 등 투쟁의 강도를 높일 태세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차후 금융사고 재발시 중복징계에 따른 가중처벌 조항까지 고려하면 현 경영진이 살아남더라도 당분간 수세적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