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음에 따라 역대 KB금융그룹 수장 5명이 모두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는 악연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런 선례를 두고 '관치의 반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황영기 지주회장, 강정원 전 은행장, 어윤대 지주회장 등 KB금융의 역대 최고경영자(CEO) 4명은 모두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이중 금융당국의 제재로 황 전 회장과 강 전 행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현역인 임 회장의 징계수위는 오는 26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의 심의에서 정해질 예정이나 금감원 내부의 분위기 등으로 볼 때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가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KB금융은 역대 수장 5명 모두가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는 '수모'를 겪는 셈이다.
KB금융과 금융당국의 악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돼 초대 통합 은행장으로 출발한 김정태 전 행장은 3연임을 꿈꾸다 임기를 한달 앞두고 제재를 받았다.
그해 9월 10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김 전 행장은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해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문책경고를 받았다. 당시 은행장에게 임원 취업을 가로막는 문책경고를 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전 행장은 다음달 말 임기종료와 함께 물러났다.
바통은 황영기 전 회장이 받았다.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 회장 출신의 황 전 회장은 2008년 9월 KB금융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금융권에 복귀했지만 불과 1년뒤에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우리은행 재직시절 1조원대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이 이유였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후 황 전 회장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해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 무리하게 징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계 은행 출신의 정통 뱅커'로 이름을 알린 강 전 행장은 2009년 9월 황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은행장 겸 회장직무대행을 수행했다. 은행장으로서는 앞서 연임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 전 행장도 금감원의 칼날에 지주회장의 희망을 접어야 했다. 부실대출과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손실, 이사회 허위보고 등으로 문책상당 경고를 받은 것이다. 당시 금감원 조사를 놓고는 무리한 뒷조사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어윤대 전 회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어 전 회장은 2010년 7월 취임 때부터 '실세 회장'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정권 말이 되면서 타깃이 됐다.
KB지주가 ING생명 인수 무산후 주총 안건 분석기관인 ISS에 미공개 정보를 건넸다는 이른바 'ISS사건'으로 주의적 경고를 받은 것이다. 애초 중징계가 점쳐졌지만 소명과정에서 수위가 낮아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어 전 회장은 9일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 대상 통보를 또다시 받아 재임당시 발생했던 금융사고의 책임을 추궁받게 됐다.
문제는 금감원이 KB금융 수장을 징계할 때마다 '손보기 식 징계', '정권 차원의 결정' 등 뒷말이 많았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작년에 이장호 전 BS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경영권 남용 등을 이유로 퇴진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에 임영록 현 회장의 징계 배경을 놓고도 관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안 하나하나가 임 회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 금감원이 감독책임만을 물어 중징계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도쿄지점 부당 대출 및 비자금 의혹, 보증부 대출 부당이자 환급액 허위 보고, 국민주택채권 90억원 횡령 등은 자체 조사를 통해 금감원에 통보된 내용이고 개인정보유출,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변경 등도 엄밀히 보면 회장 직무와 연관성이 떨어진다"며 "중징계 통보가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오너십이 존재하는 신한이나 하나은행과 달리 KB금융은 정권과 연결고리가 강한 인물이 반복해 낙하산으로 오다보니 금융당국과 충돌이 빚어지고 정권 입맛에 따라 징계가 이뤄지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며 "금융당국이 징계 결정의 이유와 절차, 수위를 좀더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