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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맨큐 교수의 세금철학
[국세칼럼]맨큐 교수의 세금철학
  • 日刊 NTN
  • 승인 2014.12.0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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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본사 논설위원

할아버지가 학생 때 배우던 책으로 손자도 공부하는 참고서가 있다. ‘수학의 정석’이다. 1966년 출판되어 지금까지 4천만권이 훌쩍 넘게 팔리고 있다. 반백 년간 우리 나라 수학 공부의 바이블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여 왔다. 경이롭다.

경제학에도 수학의 정석 같은 책이 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맨큐 교수의 경제학 교재들이 그것이다. 경제학 입문서인 ‘맨큐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이나 ‘거시경제학’은 경제학도들의 필독서여서 그야말로 경제학의 정석에 해당한다.

맨큐 교수는 블로그나 기고 등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스타 교수이다. 학술 및 정책토론은 물론 현실참여에도 적극적이다. 싱크 탱크인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금융경제학 프로그램을 맡았고, 아들 부시 정권에서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도 역임했다.

‘맨큐의 경제학’에서 그는 ‘30대 이전에 민주당이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30대 이후에 공화당이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도 남긴다. 이는 칼 포퍼의 유명한 말을 다소 변형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대선배들을 좋아하여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들을 케인즈 혹은 토빈이라 부르는 인물이다.

근자에 외국에 투자하거나 법인을 차리는 미국법인들을 빗대어 오바마 대통령은 ‘법인 탈영병’이라 세간에서 부른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을 벗어나서 해외에 투자하거나 회사를 차리는 것은 근무지를 이탈한 군인과 같다는 거다. 이런 탈 미국 현상(corporate inversion)을 매국적이라고 보는 사회적 반감이 비등하자 맨큐 교수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하여 그런 미국의 기업인들이 왜 비애국적이냐고 정면으로 되묻는다.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는 거다. 과다한 규제도 있을 수 있고 그 중에는 세금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미국에 투자하지 않고 세제상 혜택이 많은 해외에 투자하면 미국 경제에 불이익 하다고 지적하며 그런 기업들이나 기업주들을 비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역설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도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며, 모름지기 경영자에게는 기업의 세후 이익을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책무이자 덕목이라는 것이다. 세후 이익 극대화를 포기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자는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배임죄를 구성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납세자는 국가에 대한 납세의무가 있지만 안내도 되는 세금을 굳이 더 내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는 자신만의 철학이 아니라고 부연하며, 20세기의 걸출한 미국 법률가 Hand 판사의 말을 인용한다.

“미국인은 누구라도 자기의 세금이 가장 작아지도록 의사결정할 수 있다. 미국 재무성에 세금을 더 내는 쪽으로만 의사결정하도록 강요 받아서는 아니된다. 납세자가 자신의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애국적이라는 그 어떤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

미국 법인들의 해외투자 물결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의 소임을 열심히 이행하는 기업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 있다고 맨큐 교수는 질타한다. 미국의 각종 제도들이 기업을 해외로 내쫓는 결과를 낳은 건 순전히 입법자들의 책임이라는 거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알만한 기업과 납세자들이 세금을 왜 적게 내느냐는 비난을 받는 모양이다. 그런 비난의 주체는 일반 대중이나 언론일 수도 있고, 혹은 조사 공무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맨큐의 지적대로 조세도 기업에게는 비용이다. 합법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은 경영자들의 책무이다. 세금으로 애국을 강요할 순 없다. 경영자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떠나 기업의 비용을 더 들이면 상법상 Agent(경영자)의 Principal(주주)에 대한 모럴 해저드는 물론 배임 책임까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반법을 우선하는 조세협약상의 혜택을 향유하는 국제거래에서도 복잡한 거래에 대한 사전 이해나 조세조약의 전문지식이 없이 단지 세금을 적게 낸다는 이유로 소위 ‘먹튀’ 아니냐는 감정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도 우리는 흔히 본다.

놀랍지만 막대한 투자이익(Capital gain)을 한국에서 실현하여도 원천지국인 한국에서는 과세권이 전혀 없도록 규정한 조세조약이 압도적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아일랜드나 헝가리로 보내는 거액의 이자나 사용료 등에는 조약상 단 한 푼도 한국에서 세금을 뗄 수가 없도록 우리 정부와 국회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맨큐 교수의 지적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국회가 법으로 이런 비과세 통로를 공식적으로 열어놓고서, 그런 제도를 이용한 국내외 기업들을 윤리적으로 비난할 일이냐는 거다. 물론 수십 년 전 조약을 체결할 당시 아일랜드를 가보니 감자만 심어 놓은 들판이 황량하더란다. 우리가 돈 꾸어 줄 일만 있어 보여서 이자나 사용료에 원천징수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거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그런 조세조약을 이끌어낼 때 이미 국가중흥의 경제 로드맵이 있었다고 한다.

복잡한 조세이론이나 조세협약상의 특례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조세소송에서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는 사법부 결정에 대하여 감성적인 선입견으로 대리인과 법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접한다.

그럴 때마다 고뇌하는 사법부의 고민과 전문성을 우리는 너무 몰라주는 건 아닐까 안타까워진다. 사법부가 무엇이 부족하여 조세소송에서 행정부 편은 들지 않고 대리인편만 들겠는가. 차라리 비애국적(?)인 각종 법률적 제도를 비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개선에 휠씬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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