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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짜이야기] 세 수(首)의 세 줄(三行)시를 음미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세짜이야기] 세 수(首)의 세 줄(三行)시를 음미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 日刊 NTN
  • 승인 2014.12.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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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회계법인 대표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고은 시인의 ‘그 꽃’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고은(高銀) 시인은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 승려생활도 했으며 주옥 같은 많은 시를 써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가 쓴 가장 짧은‘그 꽃’이라는 시는 꼭 세 줄(三行)이며, 짧기(전문 15자字)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상징하면서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내려 갈 때 보았네 / 올라 올 때 못 본 / 그 꽃’

우선 고은 시인은 50세에 열네 살 연하의 대학 교수와 결혼 했는데 인생의 전반기(올라 올 때)에 못 보았던 여인을 인생 후반기(내려 갈 때)에 만났다는 의미로 쓴 시일 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이 젊었을 때는 배우자(특히 부인)의 소중함 잘 몰랐는데 이제 인생의 황혼기(내려 갈 때)에 알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며, 젊었을 때 몰랐던 인생의 의미를 이제 인생의 하반기에서 체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공자도 40세 불혹(不惑), 50세 지천명(知天命) 그리고 60세에 이르러 이순(耳順)이라고 했는데 이것과 맥락을 함께 하는 듯하다.

당시는 60세이면 아주 장수 한 것으로 여겼지만 100세를 사는 현재는 50세 또는 그 이상이 ‘올라 올 때’ 일지도 모른다.

이 시기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소위 出世)하는 시기로서 자신과 의욕, 경쟁이 넘처나서 주위의 여러 가지를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데 이제 연륜이 쌓이고 어른으로서 여유를 가지면서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게 된 것이다.


내려 갈 때, 위대한 그 꽃을 발견한 세 인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원래 관리로 승승장구하여 병조참판까지 올랐는데 55세에 낙마(駱馬)하여 제주도로 귀양 갔지만 천하의 명필로서 거듭났으며,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도 정조의 생전 38세까지는 잘 나갔다. 정조 사후 귀양을 가게 되면서 18년 동안 목민심서 등 실학을 집대성하는 600여권의 서적을 집필한 것은 인생 후반부(내려 갈 때)발견한 ‘그 꽃’들이었던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 BC145-85)도 관리직에 있던 중, 엉뚱하게 48세에 궁형(宮刑)을 당하고 인생의 후반기에 길이 남는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한 것도 그의 내려가는 인생에서 이룬 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꽃 ‘풀꽃’은 평범한 수 많은 민초(民草)를
그 꽃 보다 널 알려진 것이지만 또 하나의 세 줄의 시 ‘풀 꽃’은 나태주(1945년 충남 서천)라는 중견시인이 쓴 시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 스럽다 / 너도 그렇다’

풀꽃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풀 사이에 피어 있는 야생화(野生花)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들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름 모를 풀꽃은 있어도 이름 없는 풀꽃은 없다고 한다. 쇠볕꽃, 헐벗꽃, 개문멍동, 물싸리, 까마중, 봄까치꽃, 좀씀바귀, 괭이맘, 강아지풀 등등 예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꽃들은 일찌기 사람들이 자기 집 정원 등에서 정성 들여 심고 가꾸는 꽃(화초)들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고 소박해 보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예쁜) 존재가 되고 무심코 지나치면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 보면 사랑스런 꽃들, 그래서 ‘그 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일상사에서 그런 존재(民草)는 수없이 많으며, 전체로 볼 때 평범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공사(公私) 조직에서 이름을 떨치고 앞장 서 있는 존재(장미꽃 등)들도 필요하지만 그 밑 바탕에 소리 없는 많은 다수(들꽃 등)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밝은 내일(새해)을
또한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푸시킨(1799-1837)이 쓴 시 ‘삶이 그대를…’은 16행이나 되는 시이지만 표현만 조금씩 바뀌면서 네 번이나 되풀이 되는 앞부분 삼행은 다음과 같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슬픔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푸시킨은 미인인 자신의 아내를 흠모하는 군인과 결투를 벌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만 그와 그의 시를 좋아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시성(詩聖)으로 존경받고 있다.

푸시킨이 활약하던 시기는 산업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의 독립 이후. 전세계, 특히 서구역사의 큰 전환점이 이루어 지는 시기로서 권력과 신분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 농민(농노)들, 풀 꽃들로 비유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 하루의 먹을 것을 걱정하며 고달픈 삶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민초는 자신들의 고단한 형편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는 이 시를 읽으며 보다 나은 내일,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힘겨운 오늘을 견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세신문 독자 여러분들도 한해를 보내면서 개인과 가정, 공적인 일들이 계획과 희망대로 되지 않았으나(그대를 속일지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슬퍼 하거나 노여워 하지 않고) 새해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각오와 소망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바쁘게 사는 동안 지나친(보지 못한) 귀중한 가치(그 꽃) 들을 확인하고 그래서 저 멀리 있는 화려한 욕심들은 버리고 우리 주변의 풀꽃 같은 이웃, 공동사회에서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그런 새해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여러분, 내내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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