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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미생' 오차장, 현실에선 '업무상 배임죄'?
[CEO칼럼]'미생' 오차장, 현실에선 '업무상 배임죄'?
  • 日刊 NTN
  • 승인 2015.01.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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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친구 이우갑 대표이사

만약 tvN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던 최전무(이경영 분)와 ‘진정한 상사’의 모습을 보여준 영업3팀 오차장(이성민 분)이 실제 대기업 총수였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드라마에서 최전무는 자신의 영달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오차장은 계약직인 장그래(임시완 분)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국과 5억 달러 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거래를 위해서는 ‘꽌시’(인맥을 뜻하는 중국어)란 편법이 필요했고, 결국 무리한 추진 과정에서 본사 감사에 이 사실이 밝혀져 최전무는 비상장 자회사로 좌천되고, 오차장은 사표를 쓰는 것으로 ‘꽌시 사건’이 마무리됐다.

드라마에서 본사의 감사 없이 중국과의 5억 달러 계약이 성사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드라마 설정대로라면 ‘꽌시’로 지나친 비용이 발생해 회사는 단기적인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계약을 성사시킨 최전무는 사장 승진으로, 장그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의 결말을 봤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우리나라 기업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보자. 드라마에서 최전무나 오차장이 한 일을 실제 대기업 총수가 추진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선 드라마처럼 본사 감사로 인해 5억 달러 계약이 무산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황당하게도 대기업 총수는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꽌시’란 편법을 동원하려는 시도 때문에 진행 중인 다른 중국 사업들을 무산시켜 회사에 5000억이란 잠정적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드라마라면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5억 달러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가정이다. 이 경우에도 현실은 ‘단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사회단체가 대기업 총수를 검찰에 고발할 것이다. 총수는 ‘업무상 배임죄’는 물론, ‘꽌시’에 사용된 비자금으로 ‘횡령’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 가중 처벌 받게 될 수 있다.

‘업무상 배임죄’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기업 등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처벌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대기업 총수들이 이 죄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 사업은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것’이란 말이 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물려 죽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도 쉽게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기업 대표들은 회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려운 경영 판단을 내리며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운영한다.

일반 샐러리맨이 고의든 아니든 업무상 과실로 회사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을 경우, 최전무나 오차장처럼 좌천되거나 직장을 그만두면 된다.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최악의 경우 손해배상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도 기업인처럼 형사처벌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한다면 누가 직장을 다니겠는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공무를 집행하는데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면,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공무원도 하루아침에 미달 사태를 맞을 것이다.

치킨집 사장이 손해를 감수하고 원자재 구입처를 자신의 처남으로 했다고 감옥에 간다면 누가 자영업을 할 것인가? 전업주부가 부를 늘리기 위해 제도권 금융이 아닌 계를 들었다가 망했다고 쇠고랑을 찬다면 얼마나 웃긴 일이 되겠는가? 이 웃긴 일이 유독 기업인들에게만 일어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업 대표가 경영상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업무상 배임죄가 있는 독일과 일본도 ‘경영상 판단’의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배제하고 있다. 미국처럼 ‘업무상 배임’을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함에도 우리나라에서만 형사처벌까지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업무상 배임죄’ 혐의로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나타난 재벌 총수를 대역 죄인마냥 조롱하고 비웃는다. 심지어 살인범과 같은 흉악범도 받는 가석방•사면을 ‘업무상 배임죄’를 받은 대기업 총수만은 유달리 예외로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법원에 의하면 2011년 한 해에만 횡령•배임 혐의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사건이 총 5,716건, 이 중에1,496건(26.2%)만 실형이 선고됐다고 한다. 나머지 4천여 명의 억울함과 기회비용은 누가 보상하겠는가?

‘미생’에서 최전무는 “모두가 땅을 볼 수밖에 없을 때, 구름 너머 별을 보려는 사람이 임원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기업 총수는 발을 굳게 땅에 딛고서도 별을 볼 수 있는 거인(巨人)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명, 수만 명의 장그래를 위해 내리는 거인의 ‘경영상 판단’을 법률적 잣대로 재단하고, 더 나아가 형사처벌로 단죄하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소를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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