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절박한 경기가 이어지면서 세금 거두기가 엄청 어려워졌다. ‘안정적 세수확보’라는 단어가 희망사항이 된 현실에서 국세청 당국의 ‘세금 지키기’ 노력도 처절해지고 있다.
특히 세수가 어렵다고 과거처럼 강경세정을 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국세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제한돼 있다. 세금 거둔다고 자칫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격인 살얼음 경기의 불씨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신성한 세금’의 의미는 온 데 간 데 없고 뭇매를 맞을 판이다.
국세청은 지난 주 임환수 국세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송무국 발대식’을 열었다. 부과한 세금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취지다.
고액화·전문화되는 조세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세청 내 송무 조직을 확대하고 송무수행 방식도 개선해 팀제와 전담세목 조직을 운영하기로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특별 채용하는 등 조세불복에 대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췄다. 전국 세무관서의 담당 200여명 직원이 모두 참석해 ‘어떤 상황에서도 집토끼는 지킨다’는 결의를 다졌다.
국세청이 주관해 치른 발대식인 만큼 형식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참석한 전 직원이 모여 ‘송무분야 혁신 결의문’도 채택했다.
임 청장은 평소 소신대로 ‘소송은 제2의 세무조사’라고 강조하면서 ‘정당한 과세처분은 끝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해 줄 것’을 심도 있게 당부했다.
‘정당한 과세처분’은 당국은 물론 납세자에게도 절대적인 희망사항이다. 정당하지 못한 부실과세가 불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비록 세수가 어렵고 국세청이 ‘바삐’ 움직일 상황이 아닌 지금이 어쩌면 국세청으로서는 정당한 과세처분을 뿌리 내리기 위해 꼼꼼하게 되돌아보면서 내실을 기할 기회이기도 하다.
어느 전직 국세청장은 재임당시 ‘우수한 직원이 사표를 내고 로펌으로 떠난다고 인사를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소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국세청과 세무대리인과의 관계를 아주 상징적이자 사실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세수 어렵다고 한숨 쉬기에 앞서 이 시기를 국세청이 과세내실화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불경기에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고자하는 납세자와 이를 치밀하게 저지하기 위한 ‘세금전쟁’의 신호탄은 이미 올랐다.
Ⅱ
세금 지키기에 국세청만 펄펄 뛰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단골로 말썽이 나고 지적의 대상이 되는 세법상 비과세·감면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앞으로 세법에서 비과세·감면을 신설하거나 연장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과세·감면도 향후 2년간 지속적으로 축소 정비된다. 기획재정부가 세금 깎아 주는 세법 자체를 ‘적극 지양’하겠다는 방침을 뼈대로 하는 ‘2015년 조세지출 기본계획안을 만들었고 이번 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바로 시행에 들어간다.
이번 조세지출 계획안에는 조세감면 항목을 신설하거나 연장할 때 예비타당성조사와 심층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연간 감면액 300억 원 이상인 조세지출을 신규로 도입하는 경우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반드시 실시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연간 감면액 300억 원 이상인 조세지출의 일몰기한이 도래하는 경우에도 심층평가를 실시해 성과가 부진할 경우 아예 폐지하거나 설계를 다시하기로 했다.
33조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세감면은 그 비율(국세감면율)이 지난 2013년 14.3%에서 2014년 13.8%로 줄었고, 올해는 13% 이내로 감소할 전망이다. 또 현재 적용되고 있는 전체 비과세·감면 229개 중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제도가 88개(3조8000억원 수준)인데 올해 상당부분이 줄어들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벌써부터 치열한 눈치작전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현 단계에서는 기업들도 쉽게 볼멘소리를 못하지만 비과세·감면의 경우 사연이 많고 당위성과 타당성이 ‘난무’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어 예비타당성 검토와 심층평가 과정에서의 불꽃 튀는 ‘전쟁’이 확실하게 예고되고 있다.
Ⅲ
한마디로 분위기는 살벌하다.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납세자와 과세당국 간 가교역할을 수행하겠다는 포부로 세금불복을 진행하고 있는 세무사에 대해 국세청 직원들이 필요이상으로 ‘냉랭하다’는 불편한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피 말리는 세수압박에 시달리면서 소송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겠다고 결의대회까지 마치고 나온 국세청 직원들의 표정이 경직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기에다 국세청장의 가슴까지 ‘철렁’하게 만든 실력에 풍부한 경륜까지 갖춘 베테랑 세무사는 바늘구멍만한 틈도 놓치지 않고 확실한 타이밍에 공격이 들어온다. 국세청의 논리와 과세공무원의 심리까지 꿰뚫어 보며 ‘매의 눈동자’를 부라리고 있다. 심사 심판단계에서 안되면 바통은 세무사에서 변호사로 넘어간다. 또 다른 험난한 여정이 이어진다.
세금 전쟁은 누구 탓할 일이 아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소중한 재산권을 지켜야 할 일이고, 세무사는 억울한 납세자의 지킴을 조력하는 임무를 다할 뿐이다. 또 국세청 당국 역시 ‘정당하게 부과한’ 세금이라면 이를 지켜야 한다. 행위는 공방이고 공격이지만 내용은 수비인 것이 조세불복(소송)의 특징이다.
비록 전쟁이라는 표현이 동원되지만 이에 앞서 국세청 당국은 이번 상황을 불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부실과세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억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체감하고 있다. 자기비용과 노력을 써가며 굳이 세금불복의 대열로 들어서는 납세자에게는 뭔가 뚜렷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배타적으로 대하기에 앞서 겸허한 시선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어려운 경기에 납세자는 힘들고, 국세청 당국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경기가 살아야 하는데 벌지 못하니까 아껴 쓰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힘든 싸움이지만 이번 전쟁의 결과가 공정한 과세의 기초를 다지는 피드백으로 이어진다면 의미는 오히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