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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영란법으로 접대문화부터 확 바꾸자
[특별기고]김영란법으로 접대문화부터 확 바꾸자
  • 日刊 NTN
  • 승인 2015.04.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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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인 1999년 여름이었다. 국무부 한국과장이 교체됐다고 해서 신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분과 용건을 밝혔으나 한국과 여직원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전화를 다짜고짜 동아태국 공보관실로 돌렸다. 그 후에도 과장과의 통화를 한두 번 더 시도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이왕 워싱턴에 왔으니 미국 관리들과 식사나 골프를 함께 하며 취재원부터 확보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다.

생각처럼 기회가 많진 않았지만 얼마 안 가서 깜짝 놀랐다. 필자가 아쉬워 마련한 자리인 만큼 비용은 당연히 필자 몫이려니 여겼으나 그들은 한사코 자기 것은 자기가 냈다. 사실 이런 문화적 충격은 그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한국 교민이 제일 많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연수할 때 이미 겪었다. 한국에서처럼 학교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네다 망신당한 주재원이나 교민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서다.

느닷없이 필자의 옛 경험을 들추는 것은 ‘김영란법’ 파동 때문이다.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직무 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금품수수액이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 이상이면 형사처벌하고 100만 원 미만이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게 핵심이다.

3월 초 국회를 통과한 뒤 대통령 재가를 거쳐 지난주 공표됐으나 유예기간을 1년 6개월이나 둔 탓에 내년 9월 말에야 시행된다. 무려 4년이 넘는 산고 끝에 가까스로 빛을 보는 셈이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일부 의원은 법안 통과를 알리는 방망이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여론에 떠밀린 졸속 입법’이라며 법 개정을 다짐했고 대한변호사협회는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적용 대상을 원안의 공직자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까지 확대한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과잉 입법이며 배우자 불고지죄는 형법과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단체와 변호사, 금융인 등은 빼고 국회의원의 청탁에 예외를 둔 것이나 검찰권 남용 우려가 큰 것도 도마에 올랐다. 어느 교수는 식사나 선물은 3만 원, 경조사비는 5만 원 이내로 규정한 공직자윤리강령을 들어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기도 힘들게 됐다”고 비아냥댔고 일각에선 “음식점과 꽃집 등 자영업자가 모두 망하게 생겼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모든 법이 다 그렇듯 김영란법도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공직자들이 수억, 수십억 원을 꿀꺽하고도 ‘직무와 연관된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구실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태동한 게 이 법이다.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른바 ‘벤츠 女검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런 못된 관행에 철퇴를 내리자는 게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다. 세월호 참사로 민낯을 몽땅 드러낸 우리 사회의 적폐를 일소하려는 ‘사회 개조’의 역사적 첫걸음이기도 하다.

한국은 청렴한 나라가 아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175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같은 아시아권인 싱가포르(7위), 일본(15위), 홍콩(17위)에 훨씬 못 미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34개 회원국 중 하위권인 27위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란 호칭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대목이다.

취재 현장의 촌지는 거의 사라졌다지만 일부 ‘정치기자’의 탈선이 언론의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지방에선 사이비(?) 기자들의 횡포로 기업체와 관가의 원성이 드높은 차에 언론을 왜 끼워 넣었냐는 힐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촌지를 10만 원 이상 받으면 파면하고 200만 원 이상은 사법기관에 고발하는 등 김영란법보다 더 강력한 서울시교육청 촌지근절대책이 시행되는 터에 공립이니 사립이니 따지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선진사회로 가려면 접대문화부터 확 바꿔야 한다. 김영란 전 위원장도 강조했듯이 ‘접대문화로 끈끈하게 관계를 맺는’ 관행이 문제다. 정치가든, 공무원이든, 기자든, 교사든, 민원인이나 학부형 돈으로 공짜 밥 먹고 공짜 골프나 쳐서는 선진사회는 요원할 뿐이다. 말하자면 김영란법은 투명한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다. 새 문화를 세우는 마당에 옛 관행의 잣대를 들이대고 옳니, 그르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어렵사리 만든 법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난도질하기보다는 미흡한 부분을 손질해 가며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 그게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다수 정치인과 공직자, 교원, 언론인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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