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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상의 세짜 이야기]-
[김종상의 세짜 이야기]-
  • kukse
  • 승인 2012.07.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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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왔던 세 사람’

세일회계법인 대표/前부산지방국세청장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유럽에서 북서쪽으로 북해를 이웃하면서 영국 건너편에 자리 잡고 동남쪽으로는 각각 독일과 벨기에와 국경을 두고 있는 국가이다. 면적은 우리 한반도의 5분의 1인 4만㎢ 정도이고, 인구는 1700만의 작은 나라지만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이르며, 나토와 유럽공동체의 창립멤버로 당당한 선진국(수도 암스텔담)이다. 우리나라가 유럽에 처음 알려진 것은 우리나라에 표류해온 두 사람의 네덜란드 인 ‘박연과 하멜’로 인해서였다. 또 지금으로 부터 꼭 10년 전 이맘때(2002년 6~7월),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의 자신감을 한껏 북돋으고 우리나라의 국위를 세계에 드높이는데 큰 공(功-Ball)을 세운 인물도 ‘히딩크’라는 네덜란드 사람 이었다.

동양(중국)을 처음 알린 원조, 마르코 폴로-그 다음 우리나라에 온 하멜

일찍이 2~3세기부터 실크로드로 동서양의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세계가 유럽사회에 어렴풋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소개 된 것은 원나라 시대에 중국을 다녀 간 마르코 폴로(1254~1324) 라는 이태리 베니스 상인과 그가 기록한 <동방견문록>이었다고 한다. 중국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나 일본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다시 300여 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이제 육로보다는 콜럼부스의 신항로 개척(1492년), 마젤란의 태평양횡단 세계일주(1521년) 이후 더욱 발전한 항해술로 배를 타고 바다로 온 유럽(네덜란드)인들에 의해서였다. 원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항로 및 식민지 개척의 선두주자였지만 1600년대에는 영국, 네덜란드가 기선(機先-汽船)을 잡고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등으로 활발히 진출하였다. 맨 처음(1627년) 우리나라에 온 인물은 박연(원명;얀 벨테브레, 우리나라 삼대 악성의 하나인 朴堧과 다름)으로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끼로 가다가 식수를 구하러 제주도에 상륙한 것이 그 시초였다. 다른 두 사람의 동료와 함께 서울로 와서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신병기 개발을 돕고 병자호란에도 참전(다른 두 사람은 전사)하였다가 우리나라에 귀화, 결혼하여 화란(?) 박씨의 시조가 된 셈이다.

박연이 하멜의 통역관이 되고 - 14년의 임금 청구를 위해 쓴 보고서가

곧이어 등장한 네덜란드인은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이었으니 우리나라를 유럽사회에 처음 알리게 된 인물이었다. 하멜과 그 일행들(모두 36명)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을 타고 일본의 나가사끼(일본 무역거점)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불시착(1653년)하여 힘든 표류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고향사람, 박연이 내려가 통역을 해 줌으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서울로 이송되어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있으면서 본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귀양 등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결국 일본을 거쳐 1668년에야 본국에 돌아 갈 수 있었다. 귀국 후 하멜은 표류기간의 보고서로 당시의 조선(17-18대 효종, 현종시대, 코레아로 알려짐)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서술하였다. 일종의 기행문이었던 이 보고서가 ‘하멜 표류기’로서 신비한 동양의 나라가 처음으로 알려져 유럽 사람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연과 달리 조선에서 어렵고 고생 속에 지낸 하멜이 정리한 표류기는 당시 조선의 제도와 풍습, 언어를 연구하기에 좋은 자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당시 조선을 마치 공격적인 야만인의 집단으로 묘사하는 등 비판적인 내용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하멜의 표류기가 나오게 된 내력도 14년의 밀린 급료를 받기 위해 표류했던 일행들이 함께 작성한 보고서를 제일 소장파(표류 당시 23세, 귀국 시 37세)였던 하멜이 정리한 것이었다. 수 백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만 남은 것을 보면, 누군가 기록한 사람이 제일이라는 적자생존(원래 適者生存, 여기서는 Writing-Survival)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세번째 네덜란드人, 히딩크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국력이 급신장한 대한민국이 1988년 올림픽에 이어 2002년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개최하면서 우리는 ‘그저 예선(16강) 통과만이라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는 이태리, 스페인이라는 거함을 물리치고 4강까지 진출하여 세계는 물론 우리도 깜짝 놀랐다. 그 드림팀을 이끈 선봉장이 바로 네덜란드人 히딩크(Guss Hiddink, 1946~)였다.

그는 우리 대표팀을 자신의 소신대로, 팀을 구성하여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훈련을 시켰으며, 막강한 팀들을 이기는 신비스런 작전을 구사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붉은 유니폼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우리 국민들은 그 특유한 어퍼컬 동작의 히딩크와 선수들과 함께 혼연일체를 이루었던 것이다. 축구 후진국을 세계에 깜짝 등장시킨 히딩크는 약 400년 가까운 이전의 아득한 조상, 박연, 하멜 못지않게 뚜렷이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새삼 10년 전 6~7월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복했던 월드컵의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요지음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시기를 헤처나갈 활력과 지혜를 얻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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