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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결의에 의한 경영행위, 업무상 배임죄 적용 곤란”
“이사회 결의에 의한 경영행위, 업무상 배임죄 적용 곤란”
  • 정영철 기자
  • 승인 2012.12.1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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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법학회 세미나…강동욱 동국대 교수 논문 발표
“결정사항 피해자인 회사가 승낙했다면 배임성립 안돼”

‘형법355-356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는 행위’를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배임혐의 고발사건을 두고 학계와 재계서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임죄 적용범위가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는 지난 14일 한양대 법학관에서 열린 한양법학회 동계학술세미나에서 ‘이사 등의 경영 행위에 대한 배임죄 성립 범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경영자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경영판단 행위를 했다면 업무상배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해 재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강 교수는 재산 범죄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24조 규정을 기업인의 배임 혐의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임죄의 피해자는 주주가 아닌 회사이며 회사의 의사는 이사회의 결의와 같은 것이므로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이뤄진 경영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강 교수의 견해다.

그는 현행 배임죄가 배임에 따른 구체적인 손해 없이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죄형 법정주의에 반하고 이런 맹점이 배임죄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민사사건을 과도하게 형사사건화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형법 규정의 올바른 해석이라기보다는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정책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타율적이고 과도한 통제와 간섭은 기업의 대외적인 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임죄의 구성 요건과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보장될 때 성장가능성과 대외적 경쟁력을 갖는다며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 기업인 배임죄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경영 행위의 특성과 경영 원칙을 무시하면 안된다”며 “기업인의 경영 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소극적인 기업 경영과 투자 억제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사의 경영 판단 행위가 주주총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라면 피해자의 승낙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회사 소유자의 의사’에 해당하고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 많은 기업인들이 1심에서 잇따라 실형을 받았다. 법조계 전문가는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 논란은 이사회 구성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취약하고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탓도 개선돼야할 과제이다”라고 지적했다.

◇한전․ 외환은의 `이현령비현령` 배임죄

김쌍수 전 한국전력 사장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 소액주주들로부터 무려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정부 반대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능했다고 소명했지만 결국 이 사건은 법원까지 갔고, 김 전 사장의 사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후임으로 온 김중겸 전 한국전력 사장은 전기요금 10% 인상을 위해 지식경제부와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했다. 또한 전력 구매요금 산정이 잘못됐다면서 전력거래소 등을 상대로 4조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준비한 바 있다. 이는 `무리수`라는 지적을 샀지만 배임추궁을 의식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10월 외환은행 이사회가 하나고등학교에 250억여 원을 출자하려고 하자 제동을 걸었다. 하나고등학교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이 설립한 학교다. 노조 측에선 하나고에 대한 지원이 일종의 `대주주 신용공여`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은 "하나고 출연은 사회공헌 차원의 지원으로 대주주 신용공여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했다.

일반적 기업활동이 배임죄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들이다. 형법 356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는 것`을 `업무상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다. 경영상 불가피한 선택, 장기적으로 회사에 보탬이 되는 결정이라도 일단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면 배임죄를 피해가기 어렵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 임원쯤 되면 배임죄에 걸릴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배임죄는 `이현령비현령` `걸면 걸릴 수밖에 없는` 죄인 셈이다.

기준이 애매하고 대상이 폭넓다 보니 무죄나 집행유예 비율이 일반 형사범죄에 비해 월등히 높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 횡령ㆍ배임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처리된 총 5886건 가운데 무죄는 4.4%(258건), 집행유예는 35.4%(2081건)를 차지했다. 전체 형사사건에서 무죄(2.6%)와 집행유예(23.2%) 처리비율과 비교된다.

여기에다 박근혜ㆍ문재인 등 대선후보들이 모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형량을 강화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만들겠다"고 공약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5억~50억원 규모 횡령배임죄에 대한 처벌을 현행 3년 이상 징역에서 7년 이상 징역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법관 재량으로 형기를 절반 감형해도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 이하로 내려갈 수 없다.

또한 300억원 이상의 횡령ㆍ배임죄에 대해 무기 또는 15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연간 횡령배임 혐의로 인한 집행유예가 2000여 건으로 적지 않은데 모두 징역형으로 돌리려는 것이다.형법에서 정한 살인죄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임을 감안하면 횡령ㆍ배임죄가 살인죄보다 더욱 중하게 처벌되는 셈이다. 이는 투자 위축과 기업가정신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 결정과 장학사업 출연까지 처벌 대상에 오를 정도로 배임 혐의가 기업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는 현상이 공직사회를 넘어 민간기업에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강동욱 동국대 법대교수의 “이사회 결의에 따른 경영주의 결정사항에서 회사가 큰 피해를 입었다 해도 배임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논리가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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