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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砲音] ‘재량권’의 미학
[세종砲音] ‘재량권’의 미학
  • 일간NTN
  • 승인 2015.07.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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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7년 정유년에 왜(倭)는 조선을 다시 침범한다. 이때 왜군은 난공불락의 이순신 장군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첩자를 동원해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대군을 이끌고 건너온다는 역정보를 흘린다. 잘못된 정보를 믿은 선조는 이순신에게 부산포로 출정하여 적장을 생포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정보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끝내 명을 따르지 않는다.

선조는 이순신을 한양으로 압송해오도록 하여 `조정을 기망하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즉 기망조정 무군지죄(欺罔朝廷 無君之罪)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4가지 죄목을 덧씌워 극형에 처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우의정 정탁(鄭琢)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가까스로 구명된다. 병법을 모르는 선조임금과 탁상공론에 빠진 조정 신하들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았는지를 알려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기환 전 의원을 신임 정무수석에 임명하고, 새누리당이 새 원내지도부의 구도를 완성하는 등 `유승민 파문` 수습을 위한 후속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단 박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인 현기환 전 의원에게 당-청 가교의 중책을 맡기면서, 그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도 계파색이 옅은 원유철 전 정책위의장이 단일후보로 등록, `합의추대`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새누리당의 난기류는 신속하게 안정돼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박 대통령이 현기환 정무수석에게 어떤 재량권을 얼마나 줄 것인지에 달려있다. 바람직한 정무기능이란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하여 관철시키는 일방통행의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재량권`이란 항용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미처 현안들을 다 챙겨볼 여유가 없을 때나, 전문성이 더욱 필요한 문제일 경우에 허용된다. 복잡다단한 정책들이 날마다 산적하는 현대정치에 있어서 재량권의 보장은 협치(協治)의 리더십, 즉 파트너십을 극대화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수많은 정치협상에서 이 재량권 문제는 왕왕 가장 큰 변수로 작동한다.

민주주의는 정당의 대표들끼리 각자가 대변하는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책들을 꺼내놓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가 상식을 벗어난 월권을 발동하여 협상을 망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쌍방의 정황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협상대표가 어렵사리 매듭지어온 결론이 퇴짜를 맞아 정국이 어그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가 있는 협의에서 협상에 나서는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량권이다. 당연히, 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 쪽이 협상에서 우위에 설 확률이 높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협상대표와 왕성하게 소통하여 현장감을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 국회는 소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희한한 족쇄에 발목이 잡혀 `다수결의 원칙`이 망가진 희귀한 의사당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선진화법 개정`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도 누적된 답답함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선진화법`을 손대는 일이 결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선진화법` 때문에 `선진화법`은 절대 못 고친다”는 아이러니한 자탄마저 있다.

새로 임명된 현기환 정무수석은 물론, 원유철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권세력 전체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일 것이다. 엄혹하던 군주시대에, 군사들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이기기 위해 임금의 명을 어긴 이순신 장군을 어찌 그르다할 것인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장수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고 탁상공론 끝에 무조건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선조임금과 조정 신하들을 어찌 옳다할 것인가. 역사에 소중한 힌트가 있다. 

<안재휘 경북매일신문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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