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기능, 중견기업·미래산업 지원으로 전환
금융당국이 산업은행의 비금융자회사 매각에 나서는 것은 정책금융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작업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산은의 자회사 매각 계획을 밝혔다.
국책은행이고 정책금융기관이니, 민간시장에서 못하는 역할을 메워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배경에서다.
대기업 대출보다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도록 해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금융의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라 금융당국은 10월 발표를 목표로 '정책금융 역할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 산업은행 '대수술'…자회사 매각 추진
금융당국이 산업은행에 들이대는 '메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자회사의 매각이다.
6월 말 기준으로 산은이 1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는 총 288개다.
이 가운데 비금융 자회사가 118개이고 금융자회사가 10개, 벤처 육성이라는 정부정책에 따른 간접투자(LP) 형식으로 지분을 보유한 곳이 151개다. 기타 유동화전문 회사와 신탁 계정이 9곳이다.
118개의 비금융 자회사 중 2곳은 정부가 산은 증자 과정에서 현물출자한 한국관광공사, 한국감정원이다.
나머지 116개 기업 가운데 100곳은 중소·벤처투자기업으로, LP 형식으로 지분을 보유한 151곳과 함께 정책금융 지원 목적으로 투자해 보유한 업체들이다.
핵심이 되는 부분은 중소·벤처투자기업을 제외한 16곳으로,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출자전환한 회사들이다.
2분기 3조원대의 적자를 내 이슈가 된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이다.
산은이 직접 관리 중인 대우조선 외에도 채권단이 공동관리하거나 사주가 관리하는 곳이 15곳 있다.
STX엔진,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국제종합기계, 넥솔론, 동부제철, 아진피앤피, 오리엔탈정공, 원일티엔아이, ㈜STX, 켐스, 코스모텍, 한국지엠,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시멘트다.
이들 16곳 외에 산업은행 사모펀드가 간접투자해 산업은행이 관리 중인 대우건설과 KDB생명을 포함하면 18곳 안팎의 자회사가 매각 대상이 될 수 있다.
임종룡 위원장은 "부실기업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20개 정도"라며 "산은의 비금융자회사를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자목적을 달성한 기업은 당연히 가능한 것부터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매각 대상과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 정책금융 기능 재정립…중견기업·미래산업 육성역할 강화될 듯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이런 작업은 궁극적으로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정책금융의 기능을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민영화를 위해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로 분리됐으나, 현 정부 들어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책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이유로 올해 1월 다시 통합됐다.
정책금융 창구가 단일화됨으로써 통합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과 회사채 인수, 신성장산업 지원, 투자형 정책금융 등 대내 정책금융 업무를 모두 수행하게 됐다.
정금공의 업무 중 온렌딩(중소기업 간접대출)과 투자, 직접대출 자산도 산은이 가져갔고 국외자산은 수출입은행으로 이관됐다.
이렇게 정책금융의 통합창구 역할을 하게 됐지만, 최근 대우조선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책임론이 대두되는 등 산은의 관리 부실을 꼬집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따라 10월 발표 예정인 정책금융 역할 강화 방안은 산은의 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먼저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이나 상대적으로 각종 지원이 많은 중소기업보다는 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데 산은 역할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임종룡 위원장은 "대기업은 시장기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되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인데도 빠진 것은 중견기업"이라며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산업은행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대기업 자산에 대한 재점검을 추진하고, 구조조정업무는 10월 출범할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통해 시장 중심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주요 지원 기업은 성장단계별로는 중견기업이고, 산업별로는 투자위험이 높아 민간 금융사가 쉽게 손대기 어려운 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바이오 등 미래산업이 될 예정이다.
아울러 지원 방식 역시 시중은행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대출보다는 투자융자 복합, 기술금융 쪽으로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임종룡 위원장은 "성장단계별 대상 기업과 산업, 지원기능의 변화 등 세 가지에서 산업은행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금융위는 산은의 투자은행(IB) 기능 역시 일반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같은 상업적 기반의 업무는 지양하고, 정책성 업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역할을 재정립할 방침이다.
정책금융의 또 다른 축인 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 역할 재편의 논의 대상에서는 일단 빠진다.
임 위원장은 "수출입은행 본연의 업무인 무역금융은 계속할 업무"라며 "앞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출현에 따라 해외 플랜트나 새로운 수출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