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하락으로 '11개월째 마이너스 행진' 수출부진 심화될 듯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 감축에 합의하지 못한 여파로 국제유가의 날개 없는 추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016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2.32달러(5.8%) 떨어진 배럴당 37.65달러에 마감했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 사용하는 우리나라에는 국제유가 하락이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제유가 하락세는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낸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급속하게 진행되면 저유가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저유가가 우리나라의 수입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수출 규모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 들어 금액 기준으로 한국 수출은 11개월째 감소했는데, 여기에는 저유가 영향이 컸다.
유가와 매출이 연동되는 석유화학의 수출 단가가 떨어지고 저유가로 산유국의 조선, 건설, 철강 수요가 감소해 이들 업종의 수출이 부진했던 것이다.
수출 감소는 더 나아가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0%포인트였다. 내수와 더불어 경제성장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던 수출이 이제는 성장을 억제하는 걸림돌로 돌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흐름이 지속될 경우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2%대에서 탈출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장기간의 저유가에 따른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저유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유가 하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산업은 석유·화학 등 원유 생산 및 유통 관련 업종과 조선·건설 등 중동지역 건설 관련 업종이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하고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24% 줄어드는 등 저유가 여파는 수출전선에 깊은 주름살을 만들어 놓고 있다.
같은 기간 해외 건설 수주액은 406억 달러로 지난해 11월(570억 달러)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중동과 러시아 등 산유국 경기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꺾였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신흥국의 경기 둔화를 심화시키면서 수요 둔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유가 하락 이후 수출 물가가 30% 이상 급락했는데도 수출 물량 개선세는 미약하다"며 "이는 세계 수요부진이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세계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는 저유가가 이어져도 수출 물량이 개선되는 효과는 떨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반등에도 원자재 수출국을 중심으로 한 경기 둔화 압력이 강해지면서 당장 신흥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이 신통치 않다.
신흥국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8.2%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특히 올 들어 11월까지 중동지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 줄었다.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수출은 50.9% 급감했다.'
◇ 디플레 우려 다시 증폭시킬 수도
국제유가 하락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증폭시킬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걸쳐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이런 경제 환경에선 주가와 부동산 값이 함께 떨어지고 채무액의 실질가치는 늘기 때문에 기업, 가계 등 주요 경제주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에 1.0%를 기록해 12개월 만에 1%대를 회복했다.
그동안 0%대 성장률과 0%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지난 3분기 성장률이 1.3%로 1%대를 회복한 데 이어 소비자물가 상승률까지 1%대로 올라서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하락세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
국제유가는 소비자물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직접적으로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떨어뜨린다.
간접적으로는 국제항공요금, 도시가스요금 등 석유제품 원가 비중이 높은 품목의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직·간접적인 1차 파급효과 이외에 2차 파급효과도 있다.
국제유가의 하락기간이 길어지면 기대인플레이션과 근로자 임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고 근로자 임금 상승률이 둔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의 매출은 줄고 소비자는 소비를 더 미루게 된다. 결국, 기업의 투자도 줄고 임금도 떨어져 경제의 활력이 둔화될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은 글로벌 경제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국내 석유·조선·철강·기계 등 관련 수출 경기 회복 시점도 지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