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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문의 날’에 ‘참 언론’을 갈망하다
[특별기고]‘신문의 날’에 ‘참 언론’을 갈망하다
  • 일간NTN
  • 승인 2016.04.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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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 소설가
(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및 출판국장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요즘 대부분의 달력엔 이 기념일이 표시돼 있지 않다. 유래(由來)를 아는 이도 매우 드물다. ‘신문의 날’은 1896년 4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일간지인 독립신문의 창간일을 기려서 제정됐다.

독립신문 창간 2주갑(120년)을 맞는 올해, 이 신문의 뿌리와 열매를 살피는 일은 더욱 뜻 깊겠다. 창간을 주도한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의 파란만장한 일생도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

문무겸전(文武兼全)한 청년 서재필은 김옥균이 우두머리인 개화파의 막내였다. 청년들은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을 일으켜 케케묵은 조선을 단숨에 일본식으로 근대화하려 했다. 그때 서양 열강은 거대한 노(老)대국 중국을 마음껏 유린했고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를 흉내 내어 한반도와 중국대륙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조선 수뇌부는 국제 정세에 캄캄했다. 오죽 했으면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저서 《조선책략》에서 “조선은 처마의 제비가 제비집이 불붙은 것도 모른 채 근심 없이 즐겁게 지저귀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거렸을까.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지지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채 몇 백 명의 일본군 지원만 믿은 게 패인(敗因)이었다.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는 독지가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고 주경야독으로 의과대학에 다닌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그는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사가 된다.

1895년 12월 25일 귀국한 서재필은 입각 제의를 사양하고 “신문을 만들어 국민들을 계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조선 조정은 신문사 설립자금을 내놓았다. 서재필의 열정 덕분에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호가 탄생했다. 독립신문은 한글로 만들어졌기에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띄어쓰기도 최초로 단행했다. 신문은 1주일에 3회, 화·목·토요일에 냈다. 논설, 물가시세, 관보, 외국 통신 등을 실었다. 영문판 독립신문은 외교사절들에게 조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발행 이외에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건설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혀갔다. 러시아가 부산 앞바다 절영도를 조차(租借)하려 하자 서재필은 독립신문에 이를 통박하는 한편 대규모 민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어 러시아를 규탄했다. 친러파 정부는 서재필을 추방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일본도 이에 동조했다.
서재필은 신문 발행 업무를 윤치호에게 맡기고 1898년 5월 미국으로 떠났다. 이어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이후 독립신문은 1899년 12월 4일 문을 닫았다.

독립신문은 참정권, 인권 등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계몽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열강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여 민중의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독립신문에 대한 비판론도 없지 않다. 민영신문이라지만 설립자금을 국왕이 대주었으므로 사실상 ‘어용(御用) 신문’이라는 지적이다. 설립자 서재필에 대한 비판도 적잖다. 과도한 연봉을 챙겨갔느니, 서양인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렸느니 등이다. 그러나 서재필은 퇴임 때 받은 돈으로 유학생을 도왔고 미국 시민권을 가졌기에 일본인, 러시아인, 중국인 등에게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서재필과 직접 교유한 의사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기업인 유일한(유한양행 창업자) 등이 남긴 기록을 보면 서재필은 한국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민족지도자이다. 백인제는 1948년 6월 서재필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잠시 귀국한 서재필은 스스로 한국대통령 자리에 뜻이 없음을 밝혔다.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은 6·25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몸져누웠으며 1951년 1·4 후퇴 소식에 충격을 받아 1월 5일 영면했다. 서재필의 자취는 ‘신문의 날’과 서대문 독립공원의 서재필 동상, 전남 보성군의 서재필기념공원 등에 남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각각 자국 이익 기준으로 남·북한을 주물럭거리려는 오늘날 상황은 독립신문 창간 시절과 엇비슷하다. 시대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할 ‘참 언론’이 필요하다는 점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신문의 날’을 맞아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신문, 광고주 및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매체, 민족과 한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뇌하는 언론이 나타나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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