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8:11 (금)
세무조사 아는 만큼 보인다. - 자료상 조사
세무조사 아는 만큼 보인다. - 자료상 조사
  • 승인 2006.02.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세청은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탈세를 조장하는 속칭 자료상을 뿌리 뽑기 위해 자료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처 탈법 의도를 갖고 암약하는 자료상을 ‘뿌리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세청의 단속과 조사가 강도를 더해 가면 이들 자료상들도 교묘해지고 지능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간 내에 고액의 가짜세금계산서를 발행한뒤 무단 폐업하고 정상거래로 위장하기 위해 실제로 돈을 주고받은 것처럼 금융증빙을 조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물이 움직인 것처럼 운송서류를 위조한 사례도 나왔다.
자료상은 먼저 위장회사를 설립한 뒤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탈세를 돕는다.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자료상은 또 허위자료를 발행한 후 국세청의 탈세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부가가치세 확정신고가 끝나자마자 폐업하고 꼬리를 감춘다. 이어 새로운 ‘모자’로 바꿔 쓰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등 비 온 뒤 ‘독버섯’ 나오듯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늘은 국세행정의 ‘암적 존재’인 자료상 조사에 나서는 베테랑 조사공무원인 ‘나잘난’ 반장의 긴장된 조사현장을 따라가 봤다. <편집자주>

‘악어와 악어새’ 관계 시장흐름 훤히 꿰뚫고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내 P집단상가 3층 한 켠의 조그만 사무실. 이 곳은 상인들의 세금도우미(?) ‘김구라’씨의 영업장이다. 김씨는 이름만 의류업체인 (주)겁없어를 설립해 세금계산서 장사를 하고 있다. 자료상이다.
(주)겁없어의 사업자등록상 명의는 당연히 김씨가 아니다. 주변의 소개로 무능력자 이름을 빌어 명의위장 사업자등록(속칭 바지업체)을 한 것이다. (주)겁없어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있지만 제일 든든한 거래처는 역시 (주)핫바지. 무엇보다 필요할 때 서로 돕고 지내온 신뢰가 든든한 밑바탕에 깔려 있다.
(주)핫바지의 ‘충청도’ 사장은 시장에 지인이 많은 편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사업을 해 온 터라 경험으로 아는게 많고 특히 편법에 강한 편. 이 때문에 충청도 사장은 김구라 사장과 죽이 잘 맞는 편이다. 이들은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공생해 왔다.
세상만사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자료상 색출 기법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오던 이들의 철저한 공조는 국세청 세원정보 자료 수집팀의 그물망에 포착됐고 첨단을 자랑하는 자료상검색프로그램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김구라 사장이 매출부진 타개책(?)으로 고객을 늘이며 겁 없이 나선 것이 화근. 아무튼 (주)겁없어와 (주)핫바지는 이제 풍전등화 신세가 됐고, 거래업체들도 단단한 곤욕을 치를 것이다.
오랫동안 걸려들기를 인내하며 기다렸던 관할세무서에서는 집단상가 관리에 파급효과가 큰데다 거래규모를 감안해 서내 베테랑 조사요원인 ‘나잘난’ 반장을 투입했다.
풍부한 경험과 치밀하기로 소문난 나잘난 반장은 이 건 조사 착수에 앞서 얕은 한숨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드디어 걸려 들었구나…
나잘난 반장은 다소 흥분은 됐지만 차분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며 (주)겁없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유사한 조사사례 등을 검토한 뒤 조사방향과 기법을 찾아 나갔다.
특히 자료상 조사는 파생 거래처 조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주)겁없어와 거래한 업체들의 세금계산서를 꼼꼼히 챙겼다. 이 문제는 전산자료와 전산분석 체계가 워낙 잘 돼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함께 추적조사에 나설 반원에게는 이번 조사의 비중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줬다.

세금계산서 전산추적 프로그램 자료상 추적엔 최강자 입증

나잘난 반장은 시장 자료상 치고는 규모가 큰 이번 조사를 수작업으로 분석하는 것은 효율이 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 이 분야에서 성가를 검증받은 국세통합시스템의 부가가치세 신고자료 및 매입?매출 세금계산서자료를 활용한 전산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자료상 색출에 아주 효율적인 결과물을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매입처, 매입처의 매입처, 또 매입처의 매입처 등을 끝까지 연계 추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나잘난 반장과 반원들은 끈질기게 (주)겁없어의 자료내용을 추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검색 프로그램의 경우 웬만한 자료상은 쉽게 단서를 찾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번은 그렇지가 않다. “쉬운 일이 어디 있어? 결국 이번 일도 끈질긴 인내력이 승부를 가르겠구멈…” 나잘난 반장은 초조한 마음에 끊었던 담배를 한개피 들고 냄새만 맡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이 때 “반장님, 찾았습니다” 선임 반원인 족집게 조사관의 자신에 찬 보고에 나잘난 반장의 굳은 표정에는 일순 약간의 전율이 흘렀다. 족집게 조사관의 밤 낮 없는 추적 끝에 결국 원재료 매입 없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주)핫바지 등 여러업체에서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주)겁없어가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족집게 조사관의 전산추적은 또 매출처, 매출처의 매출처, 매출처의 매출처를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주)겁없어가 발행한 가짜 세금계산서를 받은 업체들이 부가가치세 신고를 위해 서로 가짜세금계산서를 주고받은 사실도 발견했다.
이들 업체들은 부가가치세 신고 시 매출세금계산서는 누락하고 (주)겁없어로부터 받은 매입세금계산서로 신고해 외형을 속이는 전형적인 속칭 ‘뺑뺑이’ 거래를 하고 있었다.
나잘난 반장과 반원들은 매일 퇴근도 잊은 채 강행군을 계속, 마침내 이번 건에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련업체에 대한 매입매출 세금계산서 흐름도를 완성하게 됐다.

원시기록 장부 예치 본조사
가짜세금계산서 관행, 공급가액의 3~10% 수수료 받고 발행

치밀한 분석을 마친 나잘난 반장. 이제 조사 베테랑으로서의 요리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조사통으로 잔뼈가 굵은 나잘난 반장이지만 일반 기업들에 대한 조사는 심적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료상 조사는 경우가 다르다. 이는 생산적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의 세금문제가 아니라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겁없어의 수백억원대 이상 가공세금계산서 거래혐의를 포착한 이상 본조사를 늦출 이유가 없었다.
나잘난 반장은 그동안 수시보고는 했었지만 진행된 내용을 종합해 보고하고 곧바로 (주)겁없어에 대해 본조사에 들어갔다.
나잘난 반장과 반원들은 조사공무원 수칙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원시기록 장부를 예치하기 위해 예치장소인 P상가 3층 (주)겁없어 사무실을 방문했다. 마침 자리에 있던 ‘김구라’ 사장에게 조사원증을 제시하고 조사목적을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 조사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비록 자료상 조사이기는 하지만 웬만해선 압수 수색 수준의 조사는 하지 않아 대부분 사전에 철저하게 파악된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위주로 조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프로 자료상 답게 김구라 사장 역시 사무실에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조사는 자칫 난관에 봉착될 위기에 직면했다. 김구라 사장 역시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에 대해 적극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역시나’였다. 나잘난 반장은 품은 많이 들지만 정공법을 택했다.

나잘난 반장은 준비조사 기간 중 체크한 내용을 꼼꼼히 짚어가며 대조해 나갔다. (주)겁없어의 매입처가 주로 국내 영세 중소기업인 사실과 고액 매입처 대부분이 단기간 사업을 영위하다가 폐업한 사실이 두드러졌다. (주)겁없어가 오랫동안 시장에서 자료상으로 버텨온 노하우이기도 하다. 대개 한 탕하고 자취를 감추는 자료상과 (주)겁없어는 차원이 달랐다. 일종의 기업형 자료상인 셈이다.
끈질긴 추적 끝에 (주)겁없어는 가짜세금계산서가 필요한 수요자로에게 공급가액의 3~7%의 수수료를 받고, 실지 거래로 위장 한 뒤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온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김구라 사장은 실제거래로 위장하기 위해 거래명세표는 물론 위장 금융거래를 한 사실도 확인했다. 세무서에서 자료상 조사 시 대금결제 내용을 반드시 확인하는 내용을 훤히 파악하고 대응해 온 것이다.
금융거래 사실 확인 과정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융거래 확인을 위해 은행점포 출장가기를 수차례 반복했으며 고생끝에 차명계좌 예금주는 대부분 (주)겁없어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람들과 김구라 사장의 친인척들인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실확인을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금융추적조사 시 확보한 명확한 금융거래자료 등 철저한 증빙제시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잘난 반장은 (주)겁없어를 실물거래 없는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자료상으로 확정하고 상세 내용을 보고했다. 결국 김구라 사장은 자료상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주도하고 불법행위를 실질적으로 이끈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고발조치 될 처지가 됐다. 최근 자료상에 대한 당국과 국민 정서상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또 이들과 거래한 (주)핫바지 등 관련업체들도 만만찮은 후폭풍을 맞게 됐다. 거래규모가 규모인 만큼 추징세액 규모도 대단하다. 아마 (주)핫바지는 부실경영를 계속해 온 전력으로 볼 때 현재의 재무구조로는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이다.
(주)겁없어의 세무대리인으로 정상거래 및 정상사업자임을 주장하건 ‘나몰라’ 세무사는 나잘난 반장의 조사가 치밀하게 진행되면서 말을 바꿨다. 자신은 이 일을 알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실제 (주)겁없어 세무대리의 경우 그쪽에서 보내 준 자료만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자료상 행위 사실은 절대 몰랐다고 자신의 입장만을 적극 항변했다. 조사과정에서 나잘난 반장에게 종씨임을 은근히 내세운 그였다. 하지만 나몰라 세무사도 (주)겁없어 조사과정에서 구체적 개입여부가 드러난다면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나반장은 준비조사에서 예상했던 내용과 추가로 발견한 내용을 빠짐없이 조사해 종결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번 조사도 결국 인내력 싸움이 됐다.

보고를 마친 나반장은 반원인 족집게 조사관과 모처럼 홀가분하게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히 (주)겁없어의 대담한 사업이 화제로 떠올랐다. “김구라 사장 그 사람 너무 용감했던 것 아니야?” 나반장의 한숨섞인 소리에 족집게 조사관이 대답했다. “김사장만의 문제겠습니까. 어차피 가짜세금계산서가 필요한 것이 아직 시장의 현실 아닐까요?”
‘쫑파티’ 식 저녁자리에서 그들은 자료상의 무모함에 대해 얘기했지만 결국 새로 등장할 제2, 제3의 김구라 사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 장희복 기자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서교동), 국세신문사
  • 대표전화 : 02-323-4145~9
  • 팩스 : 02-323-74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름
  • 법인명 : (주)국세신문사
  • 제호 : 日刊 NTN(일간NTN)
  • 등록번호 : 서울 아 01606
  • 등록일 : 2011-05-03
  • 발행일 : 2006-01-20
  • 발행인 : 이한구
  • 편집인 : 이한구
  • 日刊 NTN(일간NTN)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日刊 NTN(일간NTN)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tn@intn.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