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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稅칼럼]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國稅칼럼]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 정창영 주필
  • 승인 2016.10.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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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창 영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명확한 명제를 입증시켜 준 경주지진은 재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현실을 새롭게 이해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안전불감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느슨한 비상 대응체계와 일만 터지면 몰아붙이기 식으로 형성되는 ‘혼란’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겹쳐 경주지진 역시 국민 불안을 몇 배로 증폭시켰다.

문제를 냉정하게,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자기주장에 몰입하고, 무차별한 여론의 ‘질타’에 맡기고, 끝도 없는 ‘전부’를 거는 현상은 단지 이번 지진사태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미 국가적으로는 만병의 근원이 된 것이다.

지진이라는 심각한 재난 상황을 접하면서 체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보니 느닷없이 국가안전처의 늑장 문자메시지가 이슈의 핵심에 섰다. 지진이 났는데 화급한 사안은 뒤로 물려진 채 정부의 문자메시지가 언제 왔느냐를 두고 국회에서 따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을 두둔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국민안전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와 능력은 두고두고 씹혀도 사실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지진에 관한한 상시위험 속에서 엄청난 예산과 국민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과 단순비교하며 ‘일본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는 것이냐’로 몰아 부치는 지적에는 그것이 절대적 과제인 국민안전 문제라고는 해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한가하게 예산타령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진 대비 예산은 쥐꼬리만큼 쓰면서 ‘일본수준’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지진보다 급한 분야가 산적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지진예산을 편성할 수도 없다. 합리적 지적이 필요한 이유다.

상시 지진위험국인 일본도 1995년 무려 6,500명의 사망자를 낸 고베 대지진을 겪으며 재난안전 정책에 일대 혁신을 기했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오늘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단적으로 이번 경주지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우리사회는 지금 무슨 문제만 불거지면 무조건 일단 전부를 걸고 요구하다가 결과는 전무를 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만 맞고 너는 분명히 틀렸다’며 소통을 외면하는 정부가 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숙명과도 같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출발했다가 담당공무원의 전화를 받고 차를 돌린 A씨는 찝찝한 뒷맛보다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더 커졌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3·5·10’(식사·선물·경조사비)만 강조되고 ‘어기면 처벌’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 법의 취지나 제정 불가피 사유가 크게 희석됐다.

김영란법은 지금까지 관행화 된 우리사회의 청탁·금품수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나라가 발전은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대전제가 그렇듯 우리사회 전체가 한번 털고 갈 사안을 법으로 묶어 정비해 가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보다 선진화된 민원·소통시스템을 구축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동시에 가동돼야 제대로 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음지에서 하던 일을 양지로 끌어내는 작업인 만큼 음지에서 하면 벌 받는다는 내용만 강조하기보다 ‘왜 양지에서 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시대적 소명이 그렇고 이제는 대세가 변했다는 점을 김영란법 대상은 물론 범국민 운동으로 전개해야 그 효과를 제대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은 이처럼 고착된 우리사회의 오랜 관행을 바꾸는 작업인 만큼 우선 국민이 제대로 인식하고 바꿔 갈수 있도록, 아니 국민이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 법을 시행하면서 법 적용 대상에 대한 강제 처벌 내용을 중심으로 강조하다 보니 몸 사리는 공무원들이 공연한 오해에서 벗어나려고 ‘아예 만나지 않겠다’는 보신용 처신(‘영란부동’)으로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소통이 문제인데 아예 차단막을 둘러친 상황이 됐다. 이 법이 단지 법 적용 대상에 대한 처벌 목적보다 일종의 ‘행동강령’으로 우리사회의 새로운 관행으로 뿌리 내리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3·5·10 강령’으로 몰고 간 것은 생각이 모자랐다.

                                                   Ⅲ

전부가 아니면 전무로 결말짓는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등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다.

문제만 생기면 나라 망친 당파싸움 나듯 ‘쫙’ 갈라선다. 대화와 협상은 뒷전이고 오직 ‘마이웨이’가 판을 친다. 생각이 다르면 틀린 것이고, 줄이 다르면 적이 된다.

뒤에 숨어서 하는 비난은 상식의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목소리 크면 우선이고, 듣지 않으면 최선의 수(手)가 된다. 이런 기반에서 우리는 지금 법을 만들고, 행정집행을 하고, 세금을 거두고 있다.

세법이슈인 법인세율 문제만 해도 정치적 이슈에 갇혀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야당 주장은 ‘구호’로 들리고 정부·여당 주장은 ‘나발통’으로 치부된다. 그러니 법인세율 인상 문제는 이미 조세의 문제가 아니다. 조세논리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반이 전혀 아니다.

장관해임 건의안 국회통과, 대통령의 거부권, 정권 주변 국정개입 폭로, 여당대표 단식, 국회의장 맨입과 짜장면, 애꿎은 국감 실종 등 아주 가까운 시간에 우리가 체험한 ‘삶의 현장’을 보자. 이 코미디 같은 놀음에 국정이 스톱되고 국력이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다.

이런 정치와 이런 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 보이는지.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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