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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國稅)칼럼]국민을 ‘뭘’로 아는 사람들
[국세(國稅)칼럼]국민을 ‘뭘’로 아는 사람들
  • 정창영 주필
  • 승인 2016.10.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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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창 영

불균형과 쏠림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지금 우리사회는 앞도, 옆도, 뒤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국민 모두가 불안하고 내일이 불확실하다. 시중에 돈은 넘쳐 나는데 부자나 기업은 불안해서 쓰지 못하고, 서민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없어서 못 쓰는 고단함이 일상이 됐다.

한 방송사가 길거리에 마이크를 내놓고 유명인을 연사로 내세워 현장에서 강연을 한 뒤 대화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요즘 기운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즉석에서 모여든 청년들에게 연사는 자신의 경험과 소신을 깔끔하게 정리해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한 청년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 갖추고 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오늘 우리나라 자본주의 현실에서 ‘성공하신 연사님’은 희망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연사는 멈칫거리다가 “당장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믿는다. 절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이라면 ‘사람’들이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결정적인 전환점을 통해 세상은 변화해 왔고, 변화할 것”이라고 답변을 했다. 질문한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노력에 의한 결실보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고착화되면서 더 이상의 불평등과 불균형, 쏠림을 대다수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연사와 청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판단이다.

이런 판국에 미친 정치는 절망을 넘어 사람들을 더 환장하게 만들고 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돈도 실력이야”

요즘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으며 뉴스의 맨 앞자리에 선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국민감정의 벌집을 아주 세게 때렸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지만 이 정도라면 한마디로 철판 얼굴의 ‘끝판왕’으로 표현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자기가 노력해서 번 돈을 갖고도 ‘돈과 실력’을 직접 연관시키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의식인데, 오직 부모의 돈만 믿고 출중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의심 없이 여기는 그 의식이 국민을 더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다.

단지 철이 없어 뱉은 말이라고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소위 ‘가진 계층’과 그 자녀들의 탐욕과 오만, 무시가 이미 도를 넘는다는 지적을 단골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를 지낸 재벌가의 전 국회의원 아들은 세월호 참사의 한 가운데에서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냐’는 발언으로 민중의 분노를 일으켰고, 전직 대통령의 손녀는 프랑스 명품회사인 루이비통 사옥을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올리며 ‘정말 또 느낀다. 우리나라가 제일 구리다’는 설명을 달아 국민들이 혀를 찼다.

단지 말실수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튀어 나오게 된 현실적 배경과 이미 고착화된 우리사회의 ‘나뉨’을 굳이 꺼내려는 것이다.

국가가 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뢰와 화합, 합의가 절대적으로 기초돼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불통과 고집, 아집이 지배하고 있는데다 진영마다 권력의 힘으로, 돈의 힘으로, 투쟁의 힘으로, 맨땅에 헤딩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있다.

마치 휴화산이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이대로라면 답이 없다.

법인세율 인상 문제를 두고 정부·여당의 ‘절대 반대’와 야당의 ‘절대 관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다 급증하는 나랏빚으로 국가가 돈이 필요한데 거둘 곳이 만만치 않으니 세금 부과 대상을 두고 꼼꼼하게 따지는 것은 어쩌면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상 반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되자 정부·여당은 이제 슬그머니 부가세율로 발상의 꼼수를 옮기고 있다. 도입 40년 동안 부가세율을 10%로 묶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논리에다 주요 국가들의 부가세율이 우리의 2배 이상인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장은 아니라는 전제는 달았지만 굳이 증세를 하자면 법인세나 소득세보다 부가세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흘리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요구에 대한 ‘물 타기’ 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여기에다 여당 정책위의장은 ‘부가세수가 연간 60조원인데 세율 1%만 올려도 6조’라는 황당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국민을 잠 못 들게 하며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정부가 기껏 정책발상이라고 꺼내는 것이 이 시점에 ‘부가세율 인상’이라면 더 이상의 기대는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

국민은 ‘편중’으로 하루하루 치를 떨고 있는데 정부가 생각하는 것이 세금 교과서 맨 앞쪽에 나오는 ‘역진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며 잔머리를 굴린다면 정말 희망이 없다.

세법을 국민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돈 거둘 곳이,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가진 계층의 기득권은 다 인정해 주면서 돈 거둘 곳이 없다며 이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부가세율 올리는 일에 정부·여당이 앞장서 나발을 불어대는 현실이 참으로 끔찍하다.

설사 부가세율 인상 논의가 충분히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미뤄놓고 슬그머니 엉뚱한 주머니를 때리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다.

왜 우리나라가 이 모양인지, 왜 안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제야 풀려가고 있다. 특정 계층에 올라서면 애나 어른이나 국민을 ‘개·돼지’로 알고 있다.

그나마 블랙홀이라도 내세우던 정치는 대선을 앞두고 경제를, 민생을 아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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