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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선입견과 세금
[세상(稅想) 칼럼] 선입견과 세금
  • 김진웅 논설위원
  • 승인 2016.12.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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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웅

유영만 교수의 글은 예리하다.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 그의 글 한 토막만 소개 드린다.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기 나이만큼 키워온 개(견) 두 마리가 있다. 그 개의 이름은 ‘편견'과 ‘선입견'이다. 그렇게 울타리 쳐진 우리의 생각은 사각지대에 빠져 사각사각 죽어가고 관습과 타성에 젖은 우리 얼굴은 사색이 되고,상식의 덫에 걸린 인생은 식상해진다"

우리 머리 속에는 편견과 선입견이 도사리고 있다. 큰 용량의 대뇌를 가진 인간이 진실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려 80%가 지지하는 탄핵 민심과 검찰의 기소내용조차 모두 종북좌파의 농간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듯이 말이다.

세금에도 많은 편견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 중의 하나는 모든 회사들이 하나 같이 세금을 빼먹으려 한다는 편견이다. 세무조사나 불복을 자문하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다국적기업들은 전세계에 지점이나 현지법인을 두고 운영하다 보니 중복된 비용을 각 나라별로 지출할 것을 우려하여 소위 자체 서비스 센터라는 것을 운영한다. 가령 A국에 있는 전산센터가 전세계에 있는 관련점(본 지점, 혹은 전세계의 현지법인)을 위하여 단독으로 IT 네트워크를 통할 관리한다. 회계(accounting)는 인도 뭄바이에서 통합 관리한다. 인도는 IT 환경이 강하고 인건비가 저렴하다 보니 최적이다.

각국에서 회계 직원을 개별적으로 3명씩 채용하면 100개 국가에 현지법인이나 지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 3백명에 이를 것이다. 이를 인도 뭄바이의 저렴한 소수 인력만으로 전세계 100개 국가의 관련점 회계인력을 대신한다.

대신 뭄바이에서 발생한 회계 서비스 비용은 전세계 관련점에 매출액 비율로 배분 청구한다. 전세계 관련점은 계산내용을 이메일로 청구 받는다. 각국에는 증빙이 없다. 뭄바이에만 있다. 이런 방식으로 광고, 인사, 경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력을 감축한다. 대신 지역본부나 서비스 센터에서 아시아, 유럽지역 등으로 묶어서 관리하게 된다. 지출이 줄어들어 그룹 전체로는 윈윈이다.

IT 기업은 윈윈의 대표다. 프로그램 개발, 관리는 모사에서 하고 한국에는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영업인력(salesmen)만 두면 된다. 다른 부서가 일체 없다.

이런 IT 회사에 지방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 세무조사는 지역본부 사람들이 와서 받았다. 매년 거액의 해외 서비스 센터 비용이 계상되어 있음을 보고 조사반은 이를 몽땅 부인하였다. 국내에는 증빙이 없고, 무형의 지원 서비스여서 가공경비라고 보고 ‘싶었던’ 거다.

5개년을 합한 관련점 경비 부인으로 세금이 수백억 추징되었다. 회사는 불복하였다. 조세심판원은 해외 관련점 경비를 어떻게 100% 부인할 수가 있느냐며 재조사결정을 내렸다. 의견진술차 모인 회사측과 조사팀장에게 주심 심판관은 이런 말을 하였다 한다. “회사는 조사 당시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반면 조사반의 과세는 ‘폭압적’이었다”

조사청은 이를 재조사하여 이번에는 50%만 손비로 인정하였다. 다시 불복하였다. 이 사건은 얼마 전 행정법원에서 전액 국가 패소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법원은 관련점 경비의 손금 산입은 전액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조사반은 결국 빈손이 되었다. 그러나 조사 당시 과세관청의 입장은 매우 강경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액수의 관련점간 지원거래가 있을 수 있느냐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컸다고 한다.

가공경비를 한국에 배부하였을 것이라는 편견이 크게 작용한 거다. 편견 앞에서는 어떤 논리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방의 어느 외국계 기업은 관련점간 서비스 거래 비용을 손금 부인 당함과 아울러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국제거래를 빙자한 탈세라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온 대표자도 법인과 나란히 ‘행위자’로 고발되었다.

외국인 대표가 객지에서 사시나무 떨 듯 하는 가운데 지방 검찰청은 보기 드문 외국계기업 탈세 사건에 고무되어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한다. 관련점간 서비스 거래가 가능하다고 자문한 회계법인도 탈세 조장자로 지목되었다고 한다.

과세관청은 이를 가공경비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국내에 제반 비용에 대한 증빙이 없으니 증빙불비이고 따라서 손금 직부인이라고 주장하던 이 사건을 꼼꼼히 들여다 본 검찰은 성격상 지출증빙은 해외에 있을 수 밖에 없고 국제적인 공통비용의 배분 문제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다국적 기업간 지원 서비스 거래에 대한 관련점 경비 배분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세무원칙이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관련점간 지원 서비스 거래를 함부로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검찰도 법원도 그 정당성을 모두 인정하였으니 말이다. 향후에는 가공경비라든지 증빙이 없다는 등의 속단이 없길 기대한다.

대리인들에 따르면 국가가 패소하는 대형 과세사건의 경우 일정 부분 조사반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작용함을 지적한다. 내부 심의팀이 있긴 하나 조사반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조사반 의견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과는 다른 적극적인 형태로 제로 베이스 검토, 중립적 판단, 업계의 현황 등을 고려하는 과정을 조사반과 별도로 과세 시스템에 제도화하는 것이 패소율을 낮추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김진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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