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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제왕과 공무원의 영혼
[세상(稅想) 칼럼] 제왕과 공무원의 영혼
  • 김진웅 논설위원
  • 승인 2017.03.31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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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자기 생각은 달라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를 자조하는 듯 싶다. 이런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발언의 주인공은 고위 공직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말은 즉시 세간에 회자되었고 국민의 가슴은 많이 아렸다.

그러면 ‘시키는’ 이는 누구일까. 헌법상으로 공무원의 조직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공무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궁극적인 자리에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행정부는 그렇다 치자. 그러면 사법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국회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권분립을 의도한 헌법상으로는 그래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배신하는 이는 응징하여야 한다’는 각료회의 석상의 대통령 발언 하나로 집권당 원내 총무는 사표를 내야 했다. 그 때 사임의 변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이 무색하다는 지적이었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각부 장관의 임명제청권이 있다. 자신이 일할 손발을 스스로 뽑아 쓰라는 헌법의 취지였다. 그러나 그 헌법 정신이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 가로채왔기 때문이다. 헌법이 추구하는 삼권분립이 지켜지지 않은 방향으로 국가의 각종 조직들이 작동해온 증좌들은 차고 넘친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라는 절묘한 삼권분립의 취지는 하얗게 빛이 바랬다. 이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나오는 권능의 광채 때문이라는 지적들이다. 마침내 국회가 나서서 탄핵하고 헌재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길고도 긴 시간’ 동안 청와대는 탄핵의 인용은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듯 싶다. 막상 탄핵이 인용되었는데 정작 대통령이 돌아갈 삼성동 자택은 점검조차 하지 않아 보일러도 TV도 작동하지 아니하여 청와대를 떠날 수가 없었다. 헌재에는 대통령이 직접 천거한 이가 둘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천거한 이가 하나고 여당이 추천한 이가 둘이고 이런 계산을 하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긴 게 아니냐고 수근댄다. 아니 많은 국민들은 탄핵의 인용 가능성조차 대통령에게 감히 이야기 할 수 없는 제왕적 분위기 탓으로 추측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왜 그랬냐는 검사의 질문에 ‘청와대에 들어가면 일이 그렇게 된다’는 우병우의 말도 우리 국민의 마음에는 한 없이 걸린다.

눈을 돌려 본다. 조세심판원에는 한 해 수천 건씩 사연 있는 사건들이 접수되고 있다. 그 곳에서는 제한된 인력으로 ‘억울하다’는 국민들의 세금 불복 사건이 넘치다 보니 조세심판원 직원들의 표현에 따르면 ‘연병장 눈 쓸기’란다. 쓸어도 쓸어도 쌓이기 때문이다.

심판원 사람들이 볼 때 조금만 신경 쓰면 과세하지 않아도 될 사안들이 많아 과세관청에 연락해보면 “우리는 과세하라고 있는 기관이고 너희는 풀어주라고 있는 기관”이니 알아서 하란다는 거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과세하라는 기관’의 의미는 감사원이 과세관청을 그리 본다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즉 감사원이 세금을 매기지 않은 건만 골라 꼬치꼬치 따지니 어쩔 수 없단다.

결국 과세하지 않으면 색안경을 끼고 감사에서 불러대니 신상이 편하려면 과세할 수 밖에 없으니 심판원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사실 말이지 감사원의 감사방향은 물론 소속부터가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억울하게 과세하지는 않았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되어 있다보니 행정부 자신이 한 일을 행정부 스스로가 감사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결함을 지녔다. 게다가 5년짜리 단임 정권의 대통령 의중대로 감사를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정치성을 띠게 되고 수감기관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장단에 맞추려니 행정의 일관성이 실종된다는 거다.

실제로 미국만 해도 감사원(GAO)은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왜 국회에 소속되어 있는가 하면 각 정부조직이 이러 저러한 일을 수행하는데 이러 저러한 지출이 필요하다 하여 국회에서 예산을 타갔으니 그 정책의 추진 취지대로 정말 예산이 잘 집행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한지를 국회가 확인하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야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견제(check)가 되고 행정부처의 세출과 정책집행 결과가 감시되는데 우리처럼 국회에서는 일과성으로 선심성 예산이나 통과하면 되고, 지자체나 정부기관들은 ‘눈 먼’ 돈을 타내 치적성 지출을 하여 귀한 세금을 낭비하여도 제대로 감사가 되지 아니하는 것은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이라는 현 제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5년마다 바뀌는 단임 정권은 직속기관인 감사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무원을 통제하려 하다 보니 몸보신을 하여야 하는 공무원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영혼이 남아날 수가 없다는 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는 이 번에 탄핵정국의 전말을 보아서 온 국민이 실감하는 터이다. 나라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애꿎은 폭격을 맞은 문체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가슴도 아프다.

나라가 잘되려면 장관이 소속부처 좌장다운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뛸 수 있어야 공무원들이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총리와 장관들이 대통령의 말씀을 수첩에 적고 있어야 하겠는가. 그나저나 공무원은 물론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개헌은 언제나 될는지 모르겠다.


김진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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