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이 깨지는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소송은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대법원이 다시 확인했다.
다만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는 예외 기준은 28년 만에 확대해 사회적 변화를 일부 반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7명은 잘못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파탄주의 전환이 현단계에서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등 6명은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을 내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대법원은 우리나라가 재판상 이혼제도뿐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 제도를 택하고 있어 잘못이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이혼 가운데 77.7%는 협의이혼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또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과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제도 등을 두는 등 입법적 장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무런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판례로 기준을 제시하거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무로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있지만 사법적 기능만으로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로 전환하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간통죄 폐지 이후 중혼을 처벌할 방법이 없어진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로 간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축출이혼이 발생할 위험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1976년 A씨와 결혼한 B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온 B씨는 이 여성과 동거를 하다 2011년 A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2심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B씨의 이혼소송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시대 변화로 사실상 혼인 유지가 어렵다면 이혼을 허락하는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기고 판례 변경을 검토해왔지만, 유책주의 유지로 결론내렸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 폭은 일부 확대했다.
그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상대방이 결혼 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악의나 오기로 이혼을 거부하거나 축출 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에만 허용됐다.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앞으로는 혼인 관계 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쌍방의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 등에 대해서도 이혼이 허용되게 됐다.
대법원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확대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지난 1987년 유책주의 예외를 최초로 인정한 이후 28년 만이다.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은 개인의 행복추구보다 가족과 혼인제도의 가치를 더 중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이혼율을 억제하고 법률상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2008년 기준으로 인구 1천명당 이혼건수는 우리가 2.6건으로 영국(2.4건), 독일(2.3건), 프랑스(2.1건), 일본(2건)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히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선언한 법리에 대해서는 국민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고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상당기간 다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 만큼 이런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문 전문 < http://www.scourt.go.kr/sjudge/1442294817650_142657.pdf>
공개변론 영상< https://youtu.be/Vf9u2dZlMlI> .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