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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쟁 역행" vs "비정상의 정상화"…주류 리베이트 국세청 고시 논란
"시장경쟁 역행" vs "비정상의 정상화"…주류 리베이트 국세청 고시 논란
  • 이상현 기자
  • 승인 2019.06.14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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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소매업자들, "고시의 ‘동일 시점에 동일 가격’은 사회주의 발상" 반발
- 주류도매업계, "제조·수입업자의 업보…비정상·반칙 없애고 상생 찾는 과정"
- “4차산업혁명시대에 국가가 기업 가격결정에 인위적 개입→시장질서 왜곡"

주류 제조·수입업자가 주류도소매업자들에게 거래액의 일부를 ‘판매장려금’으로 제공할 경우 정부가 이를 주고 받는 쌍방 모두를 처벌하는 제도(쌍벌제)를 도입하기로 하자, 새 제도 시행으로 혜택이 없어진 대형주류도매업체들과 주점 등 주류소매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판매장려금 관행의 큰 수혜자였던 대형 주류도매업체들과 소형 도매업체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다가 실패하자 국세청이 판을 정리하고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주류소매업자들은 정부가 나서서 술 판매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불러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14일 본지와 만나 “국세청이 7월1일 시행을 목표로 행정예고 중인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는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당연한 명분이 있지만,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리베이트 근절의 효익이 대기업과 도매업체에게만 돌아가고 소비자가격은 인상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국세청은 지난 5월31일 ‘주류거래질서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 개정안(국세청고시 제2017-18호)’을 행정예고하고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임을 공지했다.

개정 고시는 주류 유통 정상화와 주류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구체적으로 주류 거래에 일체의 금품이나 주류, 용역 제공을 금지하고 ‘판매장려금(속칭 리베이트)’을 주고 받는 주류 제조·수입업자와 주류도소매업자들을 모두 처벌(쌍벌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다음 달 7월 1일 고시될 주세법 개정안은 자영업자를 또 한번 죽인다’는 제목으로 지난 5일부터 국민청원을 시작한 A씨는 “개정 고시안에서 대기업인 주류 제조·수입업자가 도소매업자들에게 ‘동일 시점에 동일 가격’을 받도록 명시한 것은 리베이트 규제를 위해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판매자들이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춰 매출을 늘리고자 하고 이런 판매자 경쟁의 결과 소비자들도 더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후생이 증가하는 시스템인데, 국세청의 이번 주류거래 정책은 사실상 국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학계 경제 전문가는 본지 인터뷰에서 “무자료 거래→탈세의 온상이 돼 온 주류 리베이트 근절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제조사가 유통사업자들을 건너 뛰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경쟁질서를 약화시키고 이해관계자간 후생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버닝썬 사건으로 시작된 주세법개정안이 소비자, 자영업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을 시작한 B씨는 “버닝썬 사건처럼 리베이트로 수억원을 그냥 주는 것이 문제지 일반 주류시장처럼 지원금을 상환하는 구조가 사회에 큰 문제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청원이유에서 밝혔다.

그는 “현재 52시간 근로, 회식이나 접대 기피 풍조 등으로 가뜩이나 골목상권이 침체돼 가고 있는데, 여기에 각종 단가 상승, 제조사의 행사 및 지원금이 없어지면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주류회사들의 1차 소비자를 자처하는 유흥주점들도 이번 국세청 고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김춘길 회장은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하려는 이유는 리베이트가 제품가에 반영돼 소비자가→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므로 그 실익은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져야 한다”면서 “그런데 이번 국세청 고시의 실익은 정반대로 대형 주류 메이커들과 주류도매업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춘길 회장은 또 “국세청이 이번 고시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대다수 종사하고 있는 외식업·유흥음식업·단란주점업 등 주류소매업계의 입장과 의견이 원천 배제됐다”고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주류·수입업자들과 주류도매업계 대표가 두 차례나 개정 관련 공청회·간담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과 달리, 주류소매업계 대표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주류의 주된 이해관계자인 우리 유흥주점들이 관련 법규 개정에 대한 의견 개진 기회조차 못 얻었으니, 이처럼 몰래 만들어진 개정안이 정당한가”라고 되물었다.

김 회장은 특히 “현재 주류소매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영세 자영업자들은 불경기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지속적인 매출 감소와 함께 인건비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그간 관행화 돼 그나마 주류소매업계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주던 주류판매장려금과 할인, 대여금 등을 하루아침에 금지시키는 것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길바닥에 나앉으라는 얘기”라고 하소연도 했다.

주류도매업계는 이번 조치는 제조·수입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비정상적인 업계질서가 초래한 ‘인과응보’라고 지적하며 ‘사필귀정’이라는 입장이다.

채기태 서울종합주류도매업협회 회장은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제조·수입업자들이 탈법적으로 대형주류도매업체들에게 지나친 판매장려금 등을 지원하면서, 중소도매업체들을 차별한 것이 발단”이라며 “또 주류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유흥주점들에게 직접 판매장려금을 지급해 중소도매상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채 회장은 “주류유통업계의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한 것은 상생의 도를 저버린 제조·수입업자들과 소수 대형주류도매업체들의 비정상적 반칙 영업행위”라면서 “주류도소매업계 일부가 이번 고시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이런 상생의 측면과 ‘비정상의 정상화’ 측면에서 볼 때 큰 틀에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가 “이번 국세청 고시가 자본주의 질서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고 묻자 채 회장은 “시장경제에서 가격인하를 통한 경쟁은 상식이지만, 국가가 주류산업을 면허사업으로 정하고 규제와 통제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라”면서 “굳이 주류산업이 아니더라도 업계 질서나 제도를 벗어난 ‘매점매석’이나 ‘이익 독식’은 국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식업·유흥음식업·단란주점업 등 주류소매업계는 이번 국세청 고시에 공동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국세청 행정예고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나 여야 각당 정책위원회에도 건의문을 전달하면서 고시 철회를 요청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업계는 우선 19일 부산지방국세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나머지 6개 지방국세청별로 항의 방문과 집회를 가진 뒤 마지막으로 국세청 본청이 소재한 세종시에 집결, 3개 업종의 전국 회원들이 총력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오정석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장이 지난 2월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한 '2019년도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정기총회'에서 "불공정 리베이트나 밀어내기 등 제조사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 사진=이유리 기자
오정석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장이 지난 2월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한 '2019년도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정기총회'에서 "불공정 리베이트나 밀어내기 등 제조사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 사진=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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