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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경제여건에 맞는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칼럼] 글로벌 경제여건에 맞는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 승인 2020.11.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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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타계로 유족들이 내야 할 상속세 규모가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세청이 작년 한해 거둔 전체 상속세(3조1000억원)의 3.5배에 해당하고,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된 1차 추경 예산안에 버금가는 숫자다.

때 맞춰 상속세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상속세의 부작용이 크다면 검토할 여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고 한데 이어,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단기에 막대한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줄여주기 위해 상속세 분할납부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챙겨보겠다는 점은 긍정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대안이 현재 5년인 상속세 분할납부 기간 연장에 그치는 정도라면 실망스럽다. 문제의 본질은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있다. 우리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일반인의 상속과 달리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해서는 할증률(20%)까지 적용하면 세율은 60%에 달한다.

이런 고율의 상속세제가 기업하고자 하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경영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 활동의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유족들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세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주식을 내다 팔거나 담보대출 등으로 세금을 조달한 뒤, 연부연납 방식으로 납부한다. 연부연납제는 신청 때 ‘6분의 1’을 낸 후 5년간 나머지를 분할 납부하는 제도다.


대기업 총수처럼 팔 주식이 있으면 그나마 괜찮다. 자산이나 담보 물건이 별로 없는 중소기업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내놓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쓰리세븐이다. 창업주가 타계하자 유족은 경영권을 이어받으려 했지만 15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결국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300억 원대였던 매출은 지난해 170억 원대로 주저앉았다.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도 50억원의 상속세 때문에,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했던 농우바이오 역시 1200억원의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요진건설도 900억 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사모펀드에 총지분의 45%를 매각했다. 이후 공동 창업자가 지분을 재 매입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에게 2배 이상 웃돈을 줘야했다.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면 상속재산가액의 100%(최대 500억 원 한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용한 기업은 연 평균 80여 곳에 그친다.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사후관리 기간도 너무 길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상속공제를 허용하고 있는 독일의 연간 1만 3000곳에 비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독일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제도를 통해 다양한 세제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은 가업승계 특례에 고용유지 조건을 없앴다. 우리나라도 100년 기업·장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요건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상속세는 높은 세율뿐 아니라 과세방식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피상속인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받는 사람(상속인)을 기준으로 하는 유산취득세가 더 널리 쓰인다. OECD 회원국 가운데서 한국·미국 등 5개국만 유산세 방식이고, 일본·독일·프랑스 등 16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자 개개인에게 부과하기 때문에 세금부담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억원을 가족 4명에게 균등상속할 경우 유산세 방식이라면 과세표준이 20억원이 되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이면 각각 5억원씩이 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5억원 이하는 20%, 30억원 이하는 40%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는 상속인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게 되기 때문에 조세정의에 더 부합한다는 논리다. 국고주의 입장 보다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상속세 과세표준 조정도 검토할 때다. 소득세도 20년 전에 과세표준 8000만원 초과구간에 세율 40%를 매겼지만 지금은 3억~5억 구간에 40%를 적용한다. 국민의 소득 크기가 늘었는데 과세표준을 그대로 두면 고율 납세자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2000년 이후 20년째 그대로여서 당연히 “자연증세” 비판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20년 10월 9일 발간한 『주요 입법정책 현안보고서』에서 “21대 국회에서 명목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50%) 적용 과세표준 구간을 현행 ‘30억원 초과’에서 ‘50억 원 초과’로 조정하면 30억~50억원 해당 납세자는 한 단계 낮은 40%의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세표준 조정만으로 세율 인하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상속세가 전체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에 오히려 가능한 일이다.


재산은 쓰지 않은 소득을 축적함으로써 형성된다. 따라서 이미 소득세와 재산세를 낸 재산에 또 세금을 매긴다면 중복과세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높은 상속세율을 유지하면서 소득세 최고세율(소득세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42%)마저 계속 올려 전체적인 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를 강화할수록 납세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 투자하기보다는 다 써버리기 쉽고,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곳으로 이민을 가거나 재산을 빼돌리려는 유인도 커진다.

상속세는 이제 비단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과 대도시 집값이 뛰면서 과세표준 10억에서 30억원 대 주택을 상속할 때 세율이 무려 40%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재 논의되는 제도 개선 방향은 상속세 분할납부 연장 정도다. 상속세가 기업가 정신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1주택 중산층에까지 부담을 주는 만큼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 현행 50%인 최고세율을 과감하게 낮추고, 상속받은 재산을 추후 처분할 때까지 과세가 이연되는 자본이득세 도입까지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부유층의 자산 축적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빈부격차 해소 차원의 상속세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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