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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주총 데이’ 무엇이 문제인가?
‘수퍼주총 데이’ 무엇이 문제인가?
  • 김영호 기자
  • 승인 2014.03.17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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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 권력기관서 대거 영입 ‘뒷말 무성’

삼성전자 등 116개 상장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몰린 14일 대다수 주총이 큰 잡음 없이 속전속결로 끝난 가운데 오는 21일에는 현대중공업 등 662개사가 주총을 여는 ‘슈퍼 주총데이’가 될 전망이다. 올해도 일부 상장사가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을 줄줄이 선임해 논란이 일었고 일부 상장사 주총장에선 ‘쥐꼬리’ 배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등 소액주주의 권리는 계속 겉돌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국내 주요기업들의 주주총회 현장과 주요 의결사항, 향후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지난 3월 14일 LG 전자에서 제 18기 정기 주주 총회를 열고 있다.

등기이사 선임 등 일사천리 무사통과…소액주주들 배당인상 요구 ‘봇물’
재벌 ‘쥐락 펴락’ 국민연금 반대 늘었지만 부결엔 한계… “공허한 메아리”

10대그룹 사외이사 ‘예스맨’…반대의견 0.59%
재벌그룹,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전자투표제’ 집단 거부…경제민주화 ‘외면’
특정일 ‘슈퍼 주총데이’ 비정상 주범으로 금융당국 ‘행정 편의주의’가 부채질

삼성그룹 계열사 소액주주들 “배당 올려달라" 

이날 대다수 상장사 주총은 큰 마찰 없이 1시간 내에 끝났으나 일부 상장사는 현장을 찾은 소액주주들의 배당 인상 요구 등으로 진통을 겪었다.

삼성전자 주총장에선 이익 증가 대비 주주 배당금이 적다는 소액주주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의장직을 수행한 권오현 부회장은 “정보기술(IT)산업 속성상 꾸준히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현금 흐름과 주가를 생각해 배당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주총은 소액주주와의 신경전에도 40여분 만에 끝났다.

삼성SDS 주총장에서도 한 소액주주가 “7년째 주당 배당금이 250원이다. 매출과 이익은 매년 늘어나는데 배당은 250원씩만 하고 있다”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전동수 삼성SDS 사장은 “배당에 쓰는 것보다 공격적인 기업 활동을 하는 게 낫다.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응수했다.

삼성SDS 주주들은 배당금을 1천원으로 올리는 안건을 상정해 표결에 부쳤으나 결국 부결됐다.
삼성생명 주총도 상장 공모가 11만원을 밑도는 주가와 배당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1시간 40여 분만에야 끝났다.

포스코 주총장에선 경찰이 출동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포스코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이날 주총장을 찾아 임원 보수한도(70억원) 승인 안건의 철회와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약 15분간 의사 발언을 해 안건 통과가 늦어졌다.

대신증권 정기 주총에서도 53년 만에 설립된 노동조합이 배당과 이사보수 한도, 부동산 취득 등 경영 문제를 추궁해 안건 통과가 지연되는 진통을 겪었다. 예년 주총은 20∼30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났지만, 이날은 1시간 40분가량 이어졌다.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무더기 영입

일부 상장사 주총에선 사외이사 선임 문제가 논란이 됐다.

현대해상의 주총에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김호영 전 현대해상 부사장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몽윤 회장과 다수 기관투자가가 찬성표를 던져 안건은 원안 대로 통과됐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날 주총에서도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이 대거 선임됐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13일 금융감독원 전현직 고위간부들의 사외이사 재취업을 강하게 비난하며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기업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데손해보험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출신인 강영구 전 보험개발원 원장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승인한 것을 비롯해 ▲동부화재(국방부 차관 출신 이수휴 전 보험감독원장·박상용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LIG손해보험(강성태 전 국세청 관리관·이봉주 한국보험학회장) ▲삼성생명(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코리안리(강영기 전 지식경제부 연구개발 전략기획실장·장병구 전 수협은행장) ▲삼성전기(권태균 전 조달청장) ▲삼성카드(양성용 전 금감원 부원장보) ▲현대모비스(이태운 전 서울고등법원 법원장·이병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대신증권(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HMC투자증권(임성균 전 광주지방국세청장) 등도 이날 주총에서 장·차관 등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정몽구 회장 부자·이부진 대표 등 등기이사 재선임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각각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이로써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앞으로 3년간 각각 회장직과 부회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정 회장은 현대제철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정 부회장은 여전히 사내이사에 올라 있어 그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재벌 총수 일가 중에서 드물게 호텔신라 정기 주총장에서 2012년부터 3년째 의장 역할을 수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장은 삼성가 오너 일가 중 유일하게 사내이사로 재선임돼 등기이사직을 유지했다.

LG전자도 구본준 부회장과 정도현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삼성전자는 또 등기이사 보수한도를 48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0억원을 늘리는 안건을 승인해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의 이사 보수 한도액은 지난해와 같은 150억원으로 확정됐다.

국민연금 의결권 ‘유명무실'

국민연금은 삼성그룹 14개사를 비롯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가 무려 267개사로 전체의 14.6%를 차지해 대기업들을 쥐락펴락하는 실질적인 큰 손으로 등극했다.

특히 자산 상위 10대그룹 소속 상장사(공기업 제외) 중 국민연금 지분이 5% 이상인 곳은 삼성그룹 14개사를 비롯해 모두 55개사로 10대그룹 전체 상장사(94개사)의 58.5%에 달했다. 국민연금은 이 중 LG상사, SKC, 삼성물산, LG하우시스, 롯데푸드, LG이노텍, 현대건설, 제일모직, 제일기획, 롯데칠성, 현대위아 등 11개사의 지분을 10% 넘게 확보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이 올해 들어 장기 재임과 불성실 사외이사에 대한 반대 지침을 강화하고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전체의 17%인 436개 안건에 반대 의견을 적극 펴면서 경제민주화 흐름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안건 부결까지 간 사례는 단 8건에 불과해 영향력 면에서는 여전히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60%에서 75%로 올리고 재직 연수 제한도 ‘당해회사 10년’에서 ‘당해회사 및 계열회사를 포함해 10년’으로 확대해 사외이사가 계열사를 돌아가며 장기 재임하는 것을 봉쇄했다.

하지만 기관투자자의 동참 없이는 국민연금의 반대표는 그저 사표(死票)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선 과거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난 점은 다행이지만 기관투자자의 동참, 주주대표 소송 등이 없이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노력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는 “반대 의사를 냈으면 작심하고 이기려고 해야 하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치고 있다”며 “국민연금은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해 위임장을 받아 지분을 더 확보하거나 이사가 배임, 횡령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주주대표 소송을 하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독립성 또 무산

주총 시즌이 되면 대주주들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들이 선임되지만 10대재벌 계열사 사외이사의 96%는 지난해 이사회에서 단 한 차례도 찬성 이외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원 연봉·퇴직금 인상, 이사의 보수한도 상향,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등 일반 주주의 이해와 충돌할 수 있는 주요 안건에서도 사외이사들의 반대 목소리는 없어 사외이사 제도가 구색 맞추기용 ‘거수기’나 ‘로비용’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10대그룹 91개 상장 계열사는 지난 한 해 평균 10.5차례 이사회를 열어 2151건의 안건을 처리했으나 이중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하나도 없었고 보류 안건 2건(0.09%). 수정가결 1건(0.05%), 조건부 가결은 0건이었다. 결국 사외이사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 안건은 총 3건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1년간 받아챙긴 연봉은 많게는 9천만원이 넘었다. LG 사외이사들의 작년 보수액은 1인당 9500만원이었다. 이사회 개최일수가 6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루 급여는 무려 1583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에스원(9400만원), 삼성SDI(8700만원), 현대차(8700만원) 제일모직(8600만원) 등의 순으로 사외이사 급여가 많았다.

이렇게 사외이사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권력기관이나 그룹 관계자를 영입해 거수기나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회사측에 있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변호사는 “사외이사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자리인데 고위직 은퇴 후 잠시 거쳐가는 자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회사의 흥망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를 용돈벌이용으로 인식한다면 큰 문제”라면서 사외이사들도 경영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투표제 채택기업 ‘전무’

전자투표제는 주총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기업들의 집단 거부로 외면받고 있다. 기업이 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활용하려면 이사회 결의로 채택하고 사전에 예탁원과 전자투표관리업무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3월 주총에서 전자투표제 이용을 위해 계약 체결을 신청한 곳 중에는 일반 기업이 없고 페이퍼컴퍼니인 선박투자회사 6곳 정도에 그쳤다.

지난 2010년에 전자투표제가 도입된 것은 주총이 주로 서울과 경기지역에 집중되고 매년 3월 특정 날짜에 몰려 주주 참여가 제약받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기업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유명무실한 상태다.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반대하는 것은 소액주주들이 반대 목소리만 높일 경우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는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 대주주에 대한 견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재계 반발로 다시 후퇴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후퇴 등을 놓고 이견이 클 수밖에 없어 국회 통과는 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총 정상화 첫걸음은 ‘주총데이’ 분산”

주총이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로 주총의 ‘한날 한시’ 집중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장사들은 3월 둘째 주 금요일과 셋째 주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주총을 개최한다.

‘주총데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으로 미국, 영국, 독일, 호주의 주총은 보통 두 달에 걸쳐 분산돼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주총 이전에 사업보고서를 주주들에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12월 결산법인이라면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후에 여유롭게 주총을 열면 된다. 대다수 미국 상장사가 주총 40∼50일 이전에 소집 공고를 낸다.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 “특정한 ‘주총데이’에 주주들의 참여를 어렵게 해 의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려는 기업들의 의도도 담겨 있지만, 사업보고서를 주총 승인 이후에 제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규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이 사업연도 종료 이후 90일 이내로 정해져 있고, 사업보고서는 주총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결산→외부감사→주총 소집 공고→주총’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몰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총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는 금융위원회에서 정한 사업보고서 공시 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3사업연도 중 배당금 총액, 배당수익률, 주당 배당금’을 기재해야 하는데, 배당금은 정기 주총에서 승인받은 금액이어야 한다. 굳이 주총 승인을 받은 사업보고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부실과 주총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무관심과 단기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문화도 주총 내실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주총에서 주된 역할을 해야 하는 국내기관 투자자들은 재벌 계열사 또는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을’이라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이다. 돈을 맡긴 고객보다 투자 대상인 기업과 더 가까운 이상 현상은 외부의 규제나 압력이 없으면 바뀌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기관을 대상으로 한 투자자 소송이 잦은데 국내에선 ‘기관이 내 돈을 제대로 운용하나’ 따지는 개인들이 없다. 개인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기관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개인들이 주총에 나타나 경영진과 갑론을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는 초저금리 상황에서 개인이 주식 투자를 늘리고, 장기 투자를 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다. 결국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전자투표를 도입해 소액주주의 참여도를 높이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이 올바른 주총문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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