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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稅政칼럼] 제국의 흥망성쇠
[稅政칼럼] 제국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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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2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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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鎭雄 本紙 論說委員 -
   
 
 
[소말리아 해적] 요즈음 소말리아 해적이 골치거리이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들이 그리스의 초대형 유조선 마란 센타우루스호를 풀어주는 대가로 무려 700만 달러(약 79억원)나 챙겼다. 사상최대의 액수란다. 이런 해적질은 미개한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일까?

[해적의 역사]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배를 타고 섬을 정복하기 위해 바다를 떠돌다가 티레노이(Tyrrhenoi) 해적을 만나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Homer의 ‘오디세이’와 ‘일리야드’에도 ‘해적질(Piracy)’의 기록이 있다. B.C. 140년대 로마 역사가 Polybius의 기록에도 ‘해적(Pirate)’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9∼11세기 유럽에서 바이킹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정부가 해적들과 버젓이 계약을 맺어 노략질한 물건의 약 1/3을 왕실이 세금으로 받았던 역사가 있다. 잘나가는 유럽 국가치고 과거를 캐보면 해적질의 전력이 숨어 있다. 해적의 활용, 아니 바다의 활용이 국력을 신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의 전설 드레이크] 콜럼버스 이후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각국은 무장한 자국 민간 선박에 무력 행사를 허용하는 나포 면허나 위임장(Letters of Marque)을 주면서 타국의 배를 공격하도록 부추겼다. 이들을 사략선(私掠船)업자(privateer)라고 불렀는데 쉬운 말로는 해적이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이라는 영국인이 있다.

드레이크는 해적사의 전설이었다. 1579년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서 스페인 선박 카카푸에고호를 약탈했는데 금은 등 어마어마한 재물이었다. 화물을 옮겨 싣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고 한다. 드레이크는 화물을 모두 빼앗고 그 배의 선장에게는 친절하게 ‘약탈물품 명세서’를 써주었다. 스페인 정부로부터 그 선장이 화물을 빼돌린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한술 더 떠 다른 영국 해적선에 나포되었을 때 보여주라고 안전통행증까지 써줬다. 영국 신사(?)다운 행동이었다.

1580년 드레이크는 영국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노획물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리고는 50만 파운드 상당의 보물과 재화 중 1/3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세금으로 바쳤다. 여왕은 드레이크가 가져온 진기한 에메랄드를 왕관에 박았다. 1581년 드레이크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바다와 국운]영국의 공공연한 해적질은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스페인 함대를 자극하였다. 스페인은 대대적인 영국 공격 준비를 한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의 코 앞에 도착했다. 영불해협에서 벌어진 해전. 준비가 안된 영국은 상선을 급히 개조하고, 전투에 능한 해적들의 도움을 받아 전투를 벌였다. 해적의 전설 드레이크도 출전했다. 영국은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은 역사에서 침몰하고, 세계의 바다를 손에 넣은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부상하였다. 바다는 제국을 살찌우는 목초지였던 것이다.

[동아시아] 일본과 중국도 조정이 바다까지 통제할 능력이 없다 보니 해적들이 난무 했는데 특히 왜구가 그러했다. 그들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다. 많은 내전을 겪으며 전투를 했던 전사들이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주변국들을 약탈 했기 때문이다. 해적을 국력 강화와 식민지 개척에 활용한 유럽국가들과는 반대로 중국과 한국의 조정은 해금령을 내리고, 배의 크기를 제한하는 등 바다 진출을 막아 신흥 세력의 부상을 막았다.

바다로 나가는 것을 지원한 나라들은 오늘날 모두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반대로 육지를 잠그고 바다를 등진 나라들은 식민지가 되거나 경제가 낙후되는 역사적 오류를 자초했다.

[청해진] 1200년 전 완도에는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중국 해적을 소탕하고 삼각무역으로 한중일을 주름잡았다. 그는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서주군 군대의 소장에 이르렀다.

신라인들이 중국 해적들에게 잡혀와 노비로 팔리는 것을 보고 828년 신라에 돌아와 흥덕왕에게 청하여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들을 소탕한다. 그는 바다를 통하여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중국, 동남아와 아랍에 이르는 광대한 무역망을 연결하고 신라의 물류와 무역을 융성시켰다. 신라판 해군이자 종합무역상사였다.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의 신당서와 속 일본후기 등 동아시아 삼국의 정사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인물이자 800년대의 글로벌 인재였다.

신라는 그를 차별하였다. 미천한 해도인(海島人)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암살함으로써 신라는 국운융성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또한 통일신라가 후삼국으로 분화되는 배경에는 삼국 출신을 차별한 정책이 일조하였다.

[우리의 미래] 예일대 법대 Amy Chua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국의 미래 (Day of Empire)』를 통해 로마제국, 칭기스칸이나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배경에는 인종·종교 등을 넘어선 차별 없는 개방에 있었다고 말한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짚어보니 그들의 융성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관용’에 있었고, 쇠퇴의 원인은 차별이었다는 것이다. 관용과 포용이 오히려 권력강화의 발판이 된다고 하니 무릇 조직관리에도 참고할 일이다.

Chua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용의 실체란 이질적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 말의 속내를 반추해 볼 일이다. 우리 사회야말로 관용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기득권, 지역, 출신, 계층, 이념, 종교, 심지어 나이로 갈라진 우리 사회 구석 구석에 올 해부터는 ‘관용’의 온기가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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