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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원대 상품권 시장… ‘세금 도피처' 전락?
11조원대 상품권 시장… ‘세금 도피처' 전락?
  • 日刊 NTN
  • 승인 2014.09.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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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관심속 탈세·리베이트·오너 비자금 등 '검은거래' 판쳐

백화점, 문화, 도서는 물론 대형마트나 주유소·외식업까지 퍼져가는 상품권. 매년 단골처럼 상품권깡이나 거액의 탈세·횡령사건이 종종 발생하지만, 국세청은 관련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 및 공공기관은 담당할 부처가 없다는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는 상태다. 상품권은 환금성이 있는 반면 누구나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현금조달 수단 및 지하 경제로 유입될 수 있는 우려도 높다. 상품권의 명과 암, 그 실태를 짚어 봤다. /편집자 주

최근 정부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을 두고 비상이 걸렸다. 일부 상인들이 할인된 가격에 사서 소비자에게 액면가로 되파는 속칭 상품권 깡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과 국세청에서도 상품권을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지난 5월 모 협력업체가 거액의 백화점상품권을 법인카드로 사서 이를 거래회사 임직원들에게 대량으로 나눠줬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불법자금 형성을 위해 계획한 ‘상품권 깡’인지 혹은 갑을 관계에 의거한 업체의 상납금인지 등에 대해 현재 수사 중이다.

하지만 정부가 상품권깡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품권은 거래가 이뤄져도 정부에서 명백한 거래증빙, 즉 계산서를 수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권은 유가증권의 일종으로 기타금융업에 속해 판매시 세금계산서, 계산서, 현금영수증의 발급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세무서 역시 인지세를 받은 후 상품권의 발행 및 판매 등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 유가증권은 매매시 재화의 공급이 아니라 액면가 만큼의 매입권리를 파는 것이기 때문에 증빙불비가산세 대상도 아니다.

이러한 무증빙 상황은 거래의 음성화를 야기한다. 백화점상품권의 경우 상품권마다 고유번호가 있지만 누가 샀는지 그것이 어떻게 용역과 물품으로 교환되는 지 알 수 없다. 또한 상품권은 매입한 기업의 자산이나 비용계정에만 존재할 뿐 얼마나 재고가 있는지 현황을 알 수 없다. 이를 악용한 일부 업체는 온라인에서 소비자에게 상품권을 팔아놓고는 실제 지급을 안 하는 식의 사기를 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품권을 안 줬다고 할 증빙이 없고, 상품권에 대한 법이 없어 규제도 제대로된 보상도 할 수 없는 상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선 거듭 법제정이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이를 들어주는 정부부처는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래증빙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1조원 상품권 ‘범죄온상?’수상한 상품권 거래 그내막은…

 세무법인 K모 대표는 “일반회사의 접대비 인정이 1200만원 밖에 안되는 반면 직원들의 복리후생비는 한도가 없다”면서 “기업들이 만일 법인통장에서 과다한 상품권 구매비용으로 지출한 뒤 이를 기장하지 않거나 상품권을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을 경우 경비 부인돼 탈세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접대비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하며 이를 밝히지 못할 경우 직원들 복리후생비를 가장한 비자금 조성이나 회삿돈 횡령행위로 볼 수 있는 만큼 사실관계 파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성화된 거래 ‘무법지대’

물론 상품권의 회계처리 방식을 보면 변명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매입시 자산계정에 넣고, 지출시 손금산입한다. 사용에 제한을 두어 접대비로 상품권을 쓴다고 해도 5만원 이상은 신용카드로 처리해야 접대비로 인정받는다. 접대비 명목으로 1만원 이상인 경우 적격증빙이 없으면 법인세법상 필요경비라고 쳐주지 않는다.

받는 사람에게 의무가 부여되는 장치도 있다. 직원에게 복리후생(급여)의 목적에서 지급했다해도, 목적에 따라 근로소득이나 기타소득으로 잡아 원천징수하게끔 돼 있다. 구매 부분에도 제한을 두어 백화점 상품권은 현금과 법인카드로만 살 수 있다. 2002년 개인구매자가 신용카드로 상품권깡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이를 막아 둔 것이다. 몇몇 백화점에선 일정금액 초과 구매시 신원확인 절차를 만들어 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침은 또다시 무증빙이란 벽에 걸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매와 사용처에 각종 제한을 걸어둬도 몇 번이건 반복거래를 통해 거액을 오가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1999년 상품권법의 폐지로 상품권의 발행·판매는 인지세만 내면 백화점부터 동네 구멍가게까지 누구나 가능하다. 그나마 모바일 상품권이나 충전식 카드형 상품권, 또는 공공기관 및 정부가 발행한 상품권은 인지세 납부의무도 없다.

과거 상품권법이 존재했을 때만 해도 재정경제부에서 상품권 문제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기획재정부로 정부조직이 개편되고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상품권은 국가정책에서 허공에 뜬 존재가 되어 버렸다. 기재부, 금융위나 금감원 역시 상품권과 관련 아무런 업무를 맡고 있지 않다. 한국조폐공사의 경우 기업으로부터 발행을 위탁받아 만들기만 할 뿐 실질적 관리주체는 아니다. 거래 무증빙을 통제하지 않는 이상 온라인상품권 사기나 상품권과 맞바뀐 현금이 지하경제로 녹아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리베이트 거래수단 악용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가 집중수사하고 있는 사건의 경우 또 다른 상품권 범죄를 짐작케 한다. 이 사건은 한 협력업체가 대규모 구매한 백화점상품권이 이 협력업체와 평소 거래하던 모 대기업 임직원들에게 흘러 들어간 사건이다. 이는 자연스레 상납의혹을 야기한다. 상품권은 현금처럼 사용사실만 확인될 뿐 누가 사용했는지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협력업체에게 갑 업체 임직원이 상품권으로 리베이트(상납)받아 써도 거래가 추적되지 않는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상품권은 판 사람과 산 사람만 있다면, 중간에 실제 사용자와 구매자가 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상품권을 구매자는 그 자체로 부가세까지 부담하는 셈이 되는 데, 만일 구매자(을)가 실 사용자(갑)에게 상납을 했을 경우, 아는 세금마저 을이 부담하는 꼴이 된다. 이 역시 계산서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거래 내역 확인을 위한 법적조치가 절실하지만, 검찰수사가 진행되도 기재부와 국세청의 움직임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일부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사실과 일반적인 상품권 거래 행태와는 다른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이 일부 발견돼 이에 대한 소명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아직 거래 과정에서 명확한 탈세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혐의점을 찾은 상황은 아니고 단지 의심되는 부분을 살펴 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국세청 차원에서 상품권에 대한 명확한 조사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내려진 것은 아닌 만큼 기업에서 법인카드로 과다하게 구매한 상품권의 경우 회계학적 과세근거를 찾기 위해선 먼저 구매자금의 성격과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면서 “아울러 상품권이 지급된 대상이 외부사람 또는 내부 직원인지 여부에 따라 세법상 단순 경비성 접대비 혹은 복리후생비 등으로 처리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은 거래 및 세금회피 성역(?)

국세청이 과거 상품권에 대해 팔을 걷어 붙였던 적이 있었던 적이 있기는 했다. 국세청은 지난 2005년 제화업계 상품권 깡을 두고 부가가치세 관련 매출처별 세금계산서 합계표 불성실 가산세로 수백억원을 징세했다. 하지만 이 또한 계산서가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법원은 상품권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고, 제화업계 역시 탈세 의도 및 실제 탈세도 없었다는 이유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국세청은 추징했던 세금을 부랴부랴 되돌려 줬다.

상품권이 검은 거래와 세금회피의 성지가 되다보니 이를 악용한 거액의 범죄 역시 발생했다. H모 은행 직원은 기업으로부터 상품권 외상판매 업무를 하면서 3년간 가상거래를 만들어 무려 174억원의 횡령을 저질렀다. 수년간 범죄가 들키지 않는 데엔 대금결제일마다 상품권을 빼돌린 돈으로 돌려막았던 범죄수법도 한 몫 했지만, 계산서 없이 무제한 사용해도 사용내역이 들통나지 않는 상품권의 특성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재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기를 쓰고 현금영수증의 발급의무대상과 범위를 대폭 넓힌 것은 거래증빙을 확실히 해 정확한 세원파악을 하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권은 여전히 정부부처 및 기관들의 무관심 속에 성역처럼 보호받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국내 상품권 시장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연간 주요 백화점 상품권 발행액 추계는 ▲2010년 3조원 ▲2011년 3조5000억원 ▲2012년 3조9000억원 ▲2013년 4조2000억원으로 최근 4년 사이 150%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외 종이류 상품권을 합치면 발행액은 약 9조원으로 추산된다.

모바일 상품권의 상승세도 무섭다. 2010년 283억원에 머물렀단 모바일 상품권은 지난해 1413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약 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신용카드 회사에서 발행하는 기프트카드 등을 합치면 연간 거래되는 상품권의 규모는 11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거액의 돈이 지금 무자료로 한국 사회 어딘가에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상품권의 대량할인유통, 사채업과 관련된 부당거래, 상품권 덤핑에 의한 저가, 저질 상품공급, 상품권 깡으로 인한 지하경제 양성화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법률형태의 통합적인 관리 방안을 만들어 소관 부처간 업무 중복 및 공백방지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정훈 연구위원은 “상품권법 폐지에 따라, 사실상 전면 자유화된 상품권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특히 무자료 거래와 같은 상품권의 음성적 유통이 확대될수록 금융시장과 통화정책의 실효성까지 일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상품권깡으로 인한 탈세와 비리, 거래업체에 대한 상품권 강매 등에 대한 현실적인 근절방안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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