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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 기업공시 완전 포괄주의…그 방향은?
'베일 속’ 기업공시 완전 포괄주의…그 방향은?
  • 日刊 NTN
  • 승인 2015.06.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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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가이던스의 ‘권한과 책임’ 부여…종속회사의 공시의무부담도 줄어

정부가 드디어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체계로 공시체계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1일 발표한 ‘기업공시종합시스템 구축 및 제도개선 추진방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2018년까지 공시체계를 완전포괄주의로 전환한다. 열거주의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변화되면 다변화될수록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맹점이 있는 만큼, 경제계는 그간 포괄주의체계로의 전환을 주장해왔다. 투자자 보호 없는 포괄주의 체제는 피해를 양산하는 온상이 될 수 있지만, 이번 개선안에선 구제방안이 미약하기만 하다.    /편집자 주

 

열거주의와 포괄주의 공시제도간 차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열거주의는 당국이 정해둔 항목만 공시하면 되고, 포괄주의는 당국이 범주만 정해두고 기업이 범주내에서 1차적으로 공시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지를 판단한다.

또한 열거주의 내에서 자기자본 5% 이상의 손익이 발생했을 경우 공시해야 할 내용을 재해, 벌금, 파생손실, 매출채권 이외의 손상차손 등으로 제한했다면, 포괄주의에선 자기자본 5% 이상의 중요 손해가 발행했다고 범주를 구성해두면 앞에 나열한 모든 항목들을 한 문장에 담을 수 있다.  

열거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대응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경제가 다변화될수록 기업이 겪는 내외부 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항목으로 공시내용을 일일이 정해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단순한 투자건만 아니라 업종별, 기업별, 국제적 시황변경 등 각종 변수까지 종합하면 열거주의의 대응력은 취약하기만 하다.

물론 정부가 매번 항목을 늘릴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행정적 소모, 그리고 기업의 부담만 늘릴 공산이 높다.

기업들은 열거주의가 경영적 답답함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 19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기업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농심 IR담당자는 “감독기관들이 공시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서식이나 규정을 수시로 바꾸는데, 기업공시 담당자들이 이를 못 쫓아갈 정도로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복잡화돼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공시제도가 너무 복잡해서 담당자들이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간혹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는데, 감독기관들은 이에 대해 무작정 불성실공시제도로 지정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증권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다양한 외부 이슈에 대응하지 못하는 ‘항목’들은 공시의무사항을 강화하기는 커녕 약화시키고, 질보다는 형식에 집착하는 공시체계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운용사 관계자는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과거 2~3년 동안 변화가 없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며 “미국의 경우에는 경영진들의 구체적인 계획들과 오너들의 생각 등이 담겨있는 보고서가 많은데, 국내에선 이러한 가이던스조차 제출치 않은 기업들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규제완화만 가득했던 제도개선

이런 면에서 포괄주의에의 이행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영독 등 선진국들은 이미 포괄주의를 채택한 상태다.

이번 발표에선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포괄주의의 전체적인 그림을 짐작하기 어렵다. 단지 이행계획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방침은 점진적으로 추진된다고만 밝혔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계획은 올해 말까지 포괄주의 공시의 범주를 만들고, 내년 한 해 동안엔 그간 나뉘어 있던 항목들을 재정립해 유형별 분류하는 작업을 거쳐 2018년 완전 전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포괄주의와 관련된 명시적인 안건은 풍문 등 시황변동이 발생했을 경우 기업이 적극적으로 해명공시를 할 수 있는 자율적 해명공시제도를 제외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이번 발표는 공시의 편의성, 규제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기업공시종합시스템 구축 및 제도개선 추진방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기업공시종합시스템을 구축, 거래소-금감원 등 중복 입력해야 하는 내용을 한 번에 일괄 입력할 수 있도록 하고 바뀐 서식은 바로바로 업데이트한다.

기업들의 공시부담 완화안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은 자본대비 5% 이상 ▲일반기업은 자본대비 10% 이상의 투자를 결정했을 경우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데 대기업과 일반기업을 구분하는 자산총액 기준을 1000억원 이상에서 2000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한다.

생산재개, 기술도입·이전 등 기업에게 유리한 내용은 자율공시로 이관되고, 다른 공시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거나, 공시 필요성이 낮은 ▲주식 및 주식형 사채 발행 ▲일정규모 이하의 영업전부 양수 ▲감사 중도퇴임 항목 등은 의무공시에서 자율공시로 바꾼다.

또한 ▲주주총회 소집·결의 ▲주식분할 및 병합 ▲액면/무액면 전환 ▲최대주주 변경 등 지주회사 경영과 관련성이 떨어지거나, 중복공시되는 내용은 자회사 공시항목에서 제외한다.

종속회사의 공시의무부담도 줄어든다.

한국거래소 ‘주요 종속회사’ 판단기준을 현행 5% 이상에서 지배회사 자산총액의 10%로 확대해 금융위 공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거래소와 금감원  공시 중 금융위 공시 등과 중복되어 운영실익이 적은 ‘주요 종속회사의 편입·탈퇴’ 항목을 공시항목에서 제외한다.

코스닥 시장에 대해선 현행 지배회사의 자산 또는 매출액 대비 5% 이상 영향을 주는 경우 의무공시해야 하나, 이를 10% 이상으로 상향조정한다. 공시책임자 요건도 등기이사에서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로 완화된다.

자율공시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됐다.

공시우수법인을 선정, 상장수수료 부담을 면제하고, 코스닥 내 공시우수법인의 경미한 위반은 벌점부과를 일정기간 유예한다. 일정기간 동안 근무한 상장법인 회계담당자는 공인회계사 자격 1차시험을 면제해주는 안도 추진된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거래수수료와 상장수수료가 전체 수입의 85.5%를 차지하는 만큼 상장수수료 안이 예비 상장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투자자 보호에 대한 안은 상당히 미온적이다. 분식회계 발생시 임원해임 권고 등 당국의 제재공시를 하고, 기업이 일정규모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 부사채 취득 시 공시를 의무화한다. 모자회사간 외환송금제한이나 최대주주 지위 주식담보 등이 신설된다. 상습적 불성실 공시 행위자 등에 대한 거래소의 교체 요구권이 신설되고, 허위공시에 대해선 제재금 상한을 유가증권시장 2억원, 코스닥 1억원 등으로 상향되고, 개선계획서 제출시, 6개월 후 이행보고서를 제출 및 공표해야 한다.

포괄주의의 양대축 투자자보호·공정감사

포괄주의는 규제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미 측의 포괄주의 공시의 1차 목표는 주주이익보호이며, 이에 따라 회계독립성 강화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된다.

국내 정부는 외감법 개정으로 ▲재무제표 작성 및 제출 의무 강화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자 범위 및 증권선물위원회 조치권한 확대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제한 방안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투자자가 권익을 되찾을 수 있는 손해배상소송 자체가 너무 힘들다. 국내 민사소송법상 입증책임이 원고 측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 측에 책임을 묻기가 너무 어려워서 인지 최근 분식회계 관련 소송 이슈는 회계법인으로 이동했다.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알아차리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제도가 없으니 소비자가 알아서 살 길을 모색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는 미국이 엔론, 월드컴 사태 이후 사베인스 옥슬리법을 제정, 회계법인과의 유착, 관행화된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회사대표를 상대로 직접적인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법안엔 처벌 외에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두고 있으나 이 법안의 가장 강력한 부분은 기업의 업무와 거래과정에서 법안 준수 여부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보안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화된 관리체제라고 해도 모든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법안 준수 여부를 스스로 증명하고 증명받을 수 있는 투명한 관리체제가 구축됐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허위공시에 대한 제재금의 형태도 다르다. 국내의 경우 제재금은 규모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규칙위반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어떤 민형사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경우 민사제소권을 갖고 있기에 부당이득을 전액 가져가고 추가로 민사제재금을 걷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반환하는 역할(Fair fund)을 맡는다.

주가조작은 최고 25년형, 여기에 분식회계 등 각종 범행이 중과되면 형량은 막대하게 늘어난다. 엔론의 대표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개월형,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담당했던 대형 회계법인인 아더 앤더슨은 공중분해돼 현재 미미하게 명맥만 지키고 있다.

반면 국내는 우선 감독당국을 통해 적발이 되고, 형사재판을 통해 범행이 입증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손해배상소송을 거쳐야 비로소 투자자 손해배상으로 연결된다.

정부의 포괄주의 공시체계가 모든 베일을 벗으려면 아직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기업에 자율성을 부과하는 것은 현재 추세에선 당위성을 갖는다. 하지만 포괄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은 투자자 보호에 집중했고, 그 중 미국은 엔론-월드컴-글로벌 크로싱-아더 앤더슨이란 괴물을 만들어 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아예 월가시위로 번졌을 정도다.

베일 속 한국의 포괄주의 공시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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