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2:25 (토)
국세청, 수조원대 국제소송에 비정규직 대응 '넌센스'
국세청, 수조원대 국제소송에 비정규직 대응 '넌센스'
  • 고승주 기자
  • 승인 2015.08.12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계 최상위 인재를 승진,처우,정년없는 ‘3無’ 처우로 적임자 채용 가능할지 의문

국세청이 수천억~수조원대 국제소송을 맡을 변호사를 연봉 4000~7000만원의 비정규직으로 채우려 하는 것으로 나타나 현실을 도외시한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고있다.

업계에선 ‘국세청의 눈높이는 업계 최상위 인재인데 처우는 업계 중하위권에 불과하다’며, 이번 채용에 과연 적임자가 나타날 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국세청이 유능한 민간전문가를 뽑겠다고 하고 있지만, 경직된 채용 규정을 바꾸지 않는 상태에선 어렵다는 비판마저 제기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4일 국제투자분쟁(ISD) 사건별 중재제기를 맡을 국제소송 전문변호사 채용공고를 냈다. ‘론스타 5조원대 국제소송’ 등 국제조세 대응력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제시한 업무 내용을 보면 실로 막중하다.

국제투자분쟁을 포함 ▲의향서·중재제기서 검토 및 분쟁쟁점 사실관계 확인 ▲정부대리 로펌 선정 및 관리와 중재인 선정절차 진행 ▲상대측 서면 분석 및 입증자료 수집과 우리측 대응서면 작성 ▲증인선정 및 증인 교육훈련과 중재심리기일 참석 및 대응 ▲관련 국제법규, 중재판례, 조세판례 수집 및 연구 등이다.

국세청은 최소 2년 이상 국제소송 관련분야 실무 경력을 요구하면서 연봉 4022만3000원~7076만9000원을 내걸었다. 채용자는 국세청 본청 국제조세관리관 산하 국제세원관리담당관 내 팀장(5급 사무관)으로 일하게 된다.

업계는 객관적으로 이 정도 처우에 응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모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A씨는 “그 정도 수준이면, 성과급을 제외한 연봉만으로도 국세청이 제시한 처우보다 곱절의 처우를 받는 것이 보통”이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처우”라고 전했다. 
  
물론 충분한 경력, 안정된 지위, 높은 처우를 받고 있더라도 사명감 하나로 공직에 투신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이 지난 3월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장으로 보임한 최진수 변호사는 판사 경력만 20년에 달하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이며, 4월 영입한 김신희 변호사(서울청 송무3과장)와 최성훈 변호사(중부청 송무과장)는 사법시험 41회(1999년), 43회(2001년) 출신으로 각각 검사와 조세소송 전문 변호사로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인정을 받는 인재들이다.

하지만 이들과 이번에 국세청이 채용하려는 국제소송전문변호사는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현직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제소송은 그 특성상 수백~수조원대 대규모 소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개인사무소·소형로펌은 수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국내에선 상위 대형로펌이 국세소송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대형로펌 취업자는 사법고시, 로스쿨 출신 중에서도 최상위 성적을 낸 사람들뿐이다.

대형로펌에 들어왔다고 해서 아무나 국제소송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간 법률이나 소송체계의 차이만이 아니라, 외국어로 해당 국가의 전문 법률용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사법문화까지 어느 정도 알아두지 못하면 의외의 부분에서 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경험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입 변호사에게 국제소송을 맡기는 일은 거의 드물다. 업계에선 최소 5년 정도 경력을 쌓은 시니어급 이상은 돼야 국제소송경력 1, 2년 정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A씨는 “소송가액의 규모, 접근성도 만만치 않거니와 국세청이 요구하는 국제소송, 국제투자 관련 조세분쟁 자체가 국내 소송에 비해 매우 희소성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그런 인재 자체가 매우 귀하다”며 “5급 임기직 사무관을 뽑을 때 최소 요구경력은 2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무에 바로 투입하기 위해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기에 국세청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의 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직급에도 차이가 있다.

최진수, 김신희, 최성훈 변호사는 모두 개별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3급 부이사관, 4급 서기관으로 보임된 것으로 국제소송전문변호사는 실무만을 담당할 뿐 결정권은 없는 5급 사무관에 보임된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변호사 B씨는 “5급 사무관에 두겠다는 것은 신입은 안 되고, 실무에 바로 투입할 만한 능력과 경력이 있으나, 결정권을 가진 과장급 공무원(4급 서기관)이 지휘를 할 수 있는 다소 젊은, 30~40대 전후반의 변호사를 뽑겠다는 것”이라며 “국세청 내 조세소송경력도 가치있는 경험이지만, 한창 나이대의 엘리트 경력 변호사를 사명감 하나로 구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국세청은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반 임기직 제도는 국세청 만이 아니라 전 행정부 공통사항”이라며 “우리는 규정에 맞게 정해진 한도 내에서 직급을 부여하고, 처우를 해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또한 반론은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세청은 직제규칙을 바꾸어 민간변호사를 일반직이 아니라 개방직으로 돌려 3급 부이사관에 임명한 바 있다”며 “인사는 큰 틀에서 행정자치부의 규정을 따르지만, 고공단 나급(2급 이상)이 아닌 이상 정원 내 증원 시 직급 등은 해당 기관장의 인사재량권을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변호사 C씨는 “승진의 기회도 없고, 걸맞은 처우도 해주지 않고, 비정규직이라서 매년 떠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면, 아무리 사명감이 뛰어난 인재라도 오래 버틸 수 없다”며 “만일 이 인재들이 국세청을 떠나 다른 대형 로펌 등에 고용된다면 국세청의 국제소송 대응력은 제자리 헛바퀴가 된다”고 전했다.

C씨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신입 변호사를 정규직(일반직)으로 고용해 자질을 육성하는 상생방안을 마련하거나,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사명감에만 호소하지 말고, 최소한 업계 현실을 반영하고, 시장의 처우 등에 대해 충분한 사전검토를 한 후 공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3~4급 관리직 승진 자리가 매우 한정적인 국세청으로서 사법시험 출신을 일반직으로 채용하면 기존 행시출신이나 공채출신들이 많은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행시나 공채 출신들만으로는 소송수행력이 어렵다고 판단해 변호사 채용을 늘리는 것이니 만큼 임시 교체카드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육성책도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전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서교동), 국세신문사
  • 대표전화 : 02-323-4145~9
  • 팩스 : 02-323-74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름
  • 법인명 : (주)국세신문사
  • 제호 : 日刊 NTN(일간NTN)
  • 등록번호 : 서울 아 01606
  • 등록일 : 2011-05-03
  • 발행일 : 2006-01-20
  • 발행인 : 이한구
  • 편집인 : 이한구
  • 日刊 NTN(일간NTN)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日刊 NTN(일간NTN)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tn@intn.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