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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새 풍속도]“공무원 만남 자체도 어렵다”
[김영란법 시행 새 풍속도]“공무원 만남 자체도 어렵다”
  • 신관식 기자
  • 승인 2016.10.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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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나 입법부와 의사소통 어려워질 것 우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로 인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불건전 관행, 나아가서 대가성 특혜 등을 근절하겠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당초에는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시작돼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제안할 때는 공직자들에 대해 100만원 이상의 돈을 받아도 처벌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시작됐는데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직무 관련성'을 놓고 보면 안 걸리는 분야가 한 군데도 없게 됐다. 지난 9월 28일 법 시행 뒤 사회 각계각층에서 달라진 새 풍속도를 쫓아본다 <편집자 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한달이 다 돼 가지만 사회 곳곳에서는 아직 법 적용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애초 법을 발의했던 국가권익위원회도 명확한 답안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부정 부패를 끊기 위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관행을 몰아내고 투명 사회로의 첫걸음을 뗏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시행 초기 모호한 기준과 과도한 해석 등으로 사회적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써 기존의 정을 중시하던 우리 고유 문화까지 부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것마저 새로 시행된 법에 의해 저촉을 받고 또 이를 유권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고 있다.

법 시행에 앞서 권익위가 직종별 메뉴얼과 사례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대상기관을 상대로 릴레이 강의를 해 왔지만 매일 새로운 상황에 대한 법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작게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담임선생님과 상담시 박카스 등의 음료를 놓고 가는 경우'에도 권익위는 “서류접수, 면접평가 등 밀접하고 직접적인 직무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가액 범위 내의 금품도 수수가 금지되니 정중히 거절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답했다.

“카네이션도, 캔커피도 안돼”

심지어 최근 ‘교사에게 학생이 캔커피를 줄 수 있느냐'하는 물음이 논란이 됐다. 실제로 경찰에 걸려온 ‘1호' 신고 전화가 “한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권익위는 “공공성이 강한 교육 분야의 특수성, 국민적 의식, 법 제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선물은 소액이더라도 원천적으로 금지된다"며 기본적을 ‘불가론'을 고수했다.

또 스승의날 제자가 스승의 가슴에 존경의 의미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에 대해서도 권익위 측은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는 상시 성적 평가 등 ‘직접적 직무관련'이 있으므로 ‘3-5-10'(김영란법에서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의 범위)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경호 권익위 부위원장이 지난 6일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 현황 및 향후 계획' 논의를 위한 차관회의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주는 것은 당연히 된다. 사회상규상 해온 일인데 처벌가치가 있겠느냐"라고 밝혀 해석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사회정의를 유지하는 법률인 만큼 통념상, 상식상 허용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허용해야 한다"며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교수에게 캔커피를 주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면 김영란법 권위가 훼손되지 않겠느냐"고 경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권익위를 콕 집어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게 과잉반응해서 법의 취지가 퇴색하고 부작용만 부각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운영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들과의 저녁 약속 아예 잡지도 않아”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갖가지 크고작은 사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공직에 몸을 담고 있는 공무원 등은 워낙 광범위한 이 법의 위반 가능성을 피하려고 아예 사람 만나기를 피하며 극단적으로 몸사리기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법 시행 뒤 가장 큰 변화가 닥친 곳 중 하나는 기업체의 대관업무 분야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청탁금지법 시행 뒤 “공무원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임무가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공무원 또는 국회의원 보좌관 비서관 등을 만나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 협의하고 기업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은 “법 시행 후 일차적인 변화가 공무원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몸 사리기에 나서 아예 만나주질 않는다"라며 “앞으로 정부 부처나 입법부와 의사소통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 건설사의 대관 담당자는 “공무원들이 기업인들 만나기를 심하게 꺼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비바람은 피하자'는 식으로 당분간 만남과 교류의 횟수를 줄이고 있긴 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공무원은 물론 국회 보좌관들도 법 시행 초기 ‘첫 적발 사례'가 되지 않으려 기업들과의 저녁 약속은 아예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공무원들도 기준이 모호할 때에는 몸을 낮추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공직자들은 법 자체보다 그 법을 계기로 강화된 내부감사를 더 위식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어쩌다 만나 식사를 하더라도 과거 관행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음식값 각자내기(더치페이)가 일반화됐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최근 만난 공무원들은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거나 오히려 본인이 식대를 지불한다"고 말했다.

대관 담당자들은 당장의 사업 차질은 별로 없다는 분위기지만 앞으로 이런 만남의 위축이 정책이나 법안, 인허가 등을 둘러싼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가 컸다.

IT 전자업계 대관파트의 경우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유관 관계부처에서 관련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을 받아야하는 일이 잦은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는 그런 과정이 매우 껄끄러워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한 대기업의 대관부서 관계자는 “보통 속내는 식사를 하면서 터놓을 수 있는데 합법적인 식사자리조차 의심, 불안, 계산 속에 이뤄지다보니 정부 관계자나 기업 모두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별도의 접촉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풍선효과' 현상처럼 자칫 청탁금지법 때문에 음성적인 유착관계가 더 활개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대형 건설사의 대관 담당자는 “건설 현장에선 건축관련 부서 공무원과 접촉할 일이 많은데, 예전엔 직원이 직접 찾아가 면담하고 서류를 제출하면서 설명하는 게 예의이고 관행이었다"며 “요즘은 공무원들이 ‘괜히 찾아오면 오해받을 수 있다'며 이메일로 보내라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법 시행 뒤...어렵지만 노력도

대관 담당자들의 또다른 고민은 이런 분위기에서 향후 어떤 방법으로 인맥관리를 해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 대기업 담당자는 “대관 파트에게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며 “지금은 예전부터 안면을 터놓은 담당 공무원이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앞으로 담당자가 바뀌면 정부 부처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소통하면 되겠지만 과거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충분히 전달이 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기존에 아는 사이라면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는데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업무적인 내용을 말하기도 어렵고, 그런 부부늘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자업체 대관 담당자는 “그동안 나름대로 (인맥)관리를 해왔는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새로운 인맥 찾는 건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식사나 선물 등 금품 향은이 금지되다 보니 새로운 형태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화학업체의 대관 담당자는 “새로운 방식의 친목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공무원과 주말에 등산을 가기도 한다"며 “지금으로선 제일 만만한게 등산"이라고 말했다.

주말 약속이나 저녁 약속이 줄면서 달라진 생활양식이 어색하다며 “청탁금지법 시행 뒤 ‘바른생활 사나이'가 됐다는 얘기들도 한다"고 멋쩍게 말했다.

실제로 이 법은 양벌규정이어서 대부분의 회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교적 법을 엄격하게 해석한 가이드라인을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일선의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맡은 업무를 소화하려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수 밖에 없어 결국 리스크는 개별 직원들이 떠안고 가야 할 일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이 법의 위반여부를 놓고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결과를 낳기위한 전담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애초 구상했던 법 취지 실현은 어쨋든 시간과 데이터가 좀더 쌓여야 하며 당장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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