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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거래,조세회피 아니면 적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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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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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차명계좌에 지나치게 관대한 한국

증여 아닌 차명예금 사실 증명하면 증여세 안내

법령 불명확해 불법성 여부 ‘이현령 비현령’
J그룹 정관계 로비자금, 정치자금, 연예기획사의 탈세, 고급 유흥업소의 매출누락, 공직자 뇌물 수수, 학계의 국책 연구지원비 횡령 등등. 호감이 안 가는 이들 용어들의 공통점은 차명계좌와 밀접하다는 것이다.

차명계좌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제는 비교적 관대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자녀 명의로 예금계좌를 개설해 경제적 이득을 누린 경우에도, 금융종합과세 기준을 적용한 소득세 추징이 있을 뿐 모두 증여세 조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행 금융실명제가 무기명예금을 금지하고 있을 뿐 차명거래는 허용하고 있기 때문.

증여가 아닌 차명예금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면 증여세는 피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종합과세 기준을 부부합산금액으로 적용하는 조항이 위헌으로 판결이 난 것도 차명예금을 되레 권장하는 계기가 됐다. 법원은 주식투자용 차명 증권계좌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차명계좌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 편집자 주


금융소득은 4000만원만 넘지 않으면 종합소득세 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 2005년 5월27일 헌법재판소가 자산소득에 대한 부부합산 과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에, 부부가 가령 각각 3900만원씩 금융소득을 올려도 종합소득세 신고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실제 시중은행의 PB센터에는 이런 식의 절세상담이 즐비하다. 신한 프라이빗 뱅크 PB서초센터의 황재규 세무사가 지난 4월 법률신문에 기고한 칼럼에 등장한 사례를 보자.

사업을 정리해 조성한 20억원을 은행에 맡긴 A씨는 매달 700만여원의 이자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소득이 없는 A씨는 이자로만 연간 8400만원 정도의 금융소득을 발생하지만, 4000만원을 초과하는 이자(배당)소득이 있을 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는 빠져 있다. 아들 2명과 배우자 명의의 차명계좌에 5억원씩을 분산 예치, 본인의 연간 이자소득을 2500만원정도로 줄였기 때문이다.

자녀 명의 계좌로 돈을 넣어둔 것에 대해선 증여세 과세도 쉽지 않다. 황 세무사가 소개한 또 다른 사례. 지난 2005년 B씨의 아버지는 지난 2002년 B씨 예금계좌로 1억여원을 입금했다. 세무서는 B씨에게 증여세를 과세했다. B씨는 이에 반발,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결과는 B씨의 판정승. 심판원은 위 예금계좌 개설때 사용한 실명확인 인감이 아버지의 인감과 같은 점 등을 감안,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은 아버지가 일시적으로 자녀 명의를 차용하여 개설한 예금계좌이며, 예금계좌에 입금된 예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자는 아버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따라서 차명예금을 자녀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내부정보 이용 불구, 거래 아니므로 무죄

주식거래에 이용되는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법원은 비교적 관대하다. 상장법인의 내부자인 등기이사가 자사주를 거래하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해 적잖은 단기매매차익을 거둬 주주와 송사를 벌인 사례가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내부자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단기매매차익을 거뒀을 경우, 해당 차익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 법원은 그러나 ‘차명계좌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다 돌려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지난 4월13일 건설회사인 벽산의 주주 H씨가 “대주주로서 차명계좌 주식을 단기 매매해 이익을 얻은 만큼 이를 회사에 반환하라”며 벽산 이사겸 대주주 K모씨를 상대로 낸 단기매매차익 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매도일시 및 가격과 매수일시 및 가격이 일치하는 거래 부분에 대해 단기매매차익 반환조항을 적용한 원심은 단기매매차익 반환조항의 적용대상인 매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차명계좌 및 실명계좌 거래 내용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현행 증권거래법(188조 2항)에 따르면 상장·등록법인의 임직원 또는 주요주주가 그 법인의 주식을 매수한 뒤 6개월 이내에 팔거나 매도한 뒤 6월 이내에 되사들이면서 이익을 얻었을 땐, 주주가 해당 이익을 법인에게 돌려주라고 청구할 수 있다. 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 반환에 대한 규정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차명계좌로부터 매도주문이 있었던 시점과 실명계좌로부터 매수주문이 있었던 시점이 실제 같고, 차명계좌의 매도가격과 실명계좌의 매수가격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매매차익을 반환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경우 권리이전이 없는 형식적 거래에 불과해 단기매매차익 반환조항의 적용대상인 매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이 아닌 법관이 불법성 판단

이밖에 다른 판례를 보더라도 한국의 법원이 차명계좌 이용 자체를 불법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차명계좌 이용행위 한 가지만으로는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대법98도667,1999.4.9)가 있다. 법원은 당시 “통상 다른 사람 명의의 예금계좌를 빌려 예금했다고 그 차명계좌 이용행위 한 가지만으로 무조건 ‘적극적 소득은닉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른 판례(대법86도998,1988.12.27)는 가명계좌에 분산 입금하거나, 세무조사 때 “차명계좌 예금을 통한 이자소득이 없다”고 소명하더라도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자소득이 여러 은행의 당좌나 가명예금계좌에 분산 입금됐거나, 피고인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이자소득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는 조세포탈을 위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밖에 금융실명거래제 시행에 앞서 이자소득을 은행 가명구좌에 입금시킨 사실만으로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대구고법83노690,1986.2.25)도 있다.

법원은 그러나 ▲과세대상의 미신고나 과소신고 ▲장부상 허위기장, 수표 등 지급수단의 교환반복행위(일명 자금세탁) 등 소득(재산)은닉행위가 곁들여질 경우 등에 대한 판례(대법98도667, 1999.4.9)에선 이들 사례를 조세부과징수를 어렵게 하는 적극적 부정행위로 봤다.

특히 ▲허위장부 작성 ▲차명계좌를 통한 수입금액 분산 ▲차명계좌의 반복적 신설·폐지 등이 반복적으로 이뤄진 경우,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적극적인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대법94도759, 1994.6.28)했다.

차명계좌 불법성 여부 ‘이현령비현령’
법원과 마찬가지로 과세당국과 금융감독당국도 차명계좌거래 자체를 규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차명거래가 규제 대상인 지가 법령에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아 ‘이현령비현령’ 소지가 있는 셈.

적극적 조세회피 감시를 위해 범죄목적이 의심되는 금융거래 관련 정보를 금융기관으로부터 법령에 따라 제공받아 분석, 법에 따라 조치하는 금융정보분석원도 자체 유권해석에서 “부부간 차명거래일 경우라도 범죄 목적이 없다면 해당 금융정보가 보고되지 않으며, 금융기관도 해당 거래를 거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정원은 다만 “불법행위 또는 자금세탁의 의심이 있을 경우에 한해 그 거래내용이 금융정보분석원에 혐의거래로 보고된다”고 밝혔다.
법령이 아닌 ‘공직자의 의심’이 차명금융거래의 불법성의 잣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안종명 기자 lunyou@


●법조계, 재경부 금융실명제 강화 ‘시큰둥’

“거액재산가 차명거래 사실상 부추겨”

대법원 판례는 금융자산의 명의신탁 효력을 강하게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A가 B의 이름을 빌려 예금거래를 한 경우, 실소유자인 A가 B에 예금 반환을 청구한 경우 B는 A에게 예금을 돌려주도록 판결하고 있는 것.

법원을 포함한 법조계 대부분도 ‘금융실명제 강화를 통한 명의신탁 효력 무효화’에 시큰둥하다. 명의신탁 무효화가 법제화 되더라도 민법상 부당이익반환 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효과가 없다는 주장.

재정경제부도 금융실명법 강화에 회의적이다. 재경부는 금융실명제법을 강화해 차명거래 자체를 반대하자는 여론에 대해 “금융실명법에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더라도 은행직원이 일일이 실명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재경부 주장에 대해 “엉뚱한 논리”라고 전제, “차명거래가 적발된 경우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차명거래 방지의 효과가 있다”며 “부당이익반환을 청구하려면 실소유자 본인이 차명거래를 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한은행 황재규 세무사는 “자녀나 친인척 명의로 분산 예금해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해가면서 증여세도 과세되기 힘든 점이 자산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 “국세청이 차명계좌임을 확인할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는 가능하지만, 국세청 확인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부동산실명법과 마찬가지로 차명계좌를 이용할 경우 과징금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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