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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 벤처 1세대의 통 큰 쾌척, 새 기부문화가 자리 잡는 기폭제 되길
[국세칼럼] 벤처 1세대의 통 큰 쾌척, 새 기부문화가 자리 잡는 기폭제 되길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1.03.0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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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달 8일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카카오 지분 가치의 절반 이상이면 5조 원을 넘는 액수다. 곧 이어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이사회 의장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한국인 중 첫 ‘더 기빙 플레지’ 회원이 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이 기부 클럽은 재산 10억 달러(약 1조1060억원) 이상이면서 절반 이상 기부를 서약해야 가입할 수 있다.

이들의 기부 결정은 두 가지 면에서 신선하다. 먼저 액수가 현재 시세로 국내 기부 사상 최대 규모란 점과 이른바 부모 찬스 없이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도 기업에 무슨 문제가 발생해서 대국민 사죄용으로 내놓겠다는 것도 아니다. 가족에게 주식을 증여한데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하는 일부 시각도 있지만 이번 기부를 ‘소나기 피하기’라고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사회를 위해서 내놓겠다는 순수한 선의로 받아들여진다.


김범수 의장은 기부금 용도로 사회문제 해결을 꼽았다. 카카오톡 출시 10주년을 맞아 공개한 영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더라도 카카오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직 미흡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가 재단 형식을 빌려 일자리·복지·환경·교육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미래형 인재 발굴에 나설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김봉진 의장도 기부금을 교육·문화예술 지원에 쓰겠다고 밝혔다.

김범수 의장은 단칸방에 살던 2남 3녀 중 맏아들로 흙수저도 아니고 그냥 흙이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김봉진 의장은 인구 100여 명인 전남 완도군 구도에서 태어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거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219번째 세계적 기부자가 되었다. 이들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끈질긴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우뚝 섰으니 가히 입지전적이라 할만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기부(寄附)’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없이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기부의 대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이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눔으로써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동참한다는 뿌듯함도 대가라면 대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수적으로 금전적인 이득도 있다.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도 받고, 기업은 손비인정 방식으로 세제혜택을 받는다. 물론 기부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당근책이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한해 전체 기부금액은 개인소득자가 1조3145억, 법인사업자가 5조2876억원이다. 근로자가 기부금 세액공제를 통해 연말정산에서 환급받은 세액도 9883억원이나 된다. 기부금을 낸 법인은 2015년 59만1694개에서 2019년 78만7438개로 4년 동안 33% 증가한 반면 기부금 총액은 2015년 4조7782억에서 2019년 5조2876억으로 같은 기간 10,7%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를 두고는 그동안 사회문제로 비화된 기부금 사기사건 때문에 대기업의 기부행위가 움츠러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좋은 일에 돈을 쓰고도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학습효과 탓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사회가 기부문화 확산을 독려한 만큼 기부금이 쓰이는 것에 대한 검증·감시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설립과 인가, 기부금 모집까지 편법 그 자체였던 미르·K스포츠재단을 비롯해 4만 9000명으로부터 받은 128억원의 기부금을 흥청망청 써버린 새희망씨앗 사건,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 등은 우리 머릿속에 기부라는 선한 의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쁜 인식의 중심에는 대부분 지정기부금 단체를 통한 모금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지정기부금 단체는 각 기관에서 추천을 받아 기획재정부가 지정하는 경우와 정부 등의 인허가와 동시에 자동 지정되는 경우가 있다. 민법상 허가대상인 비영리법인이나 사회적협동조합 등은 주무관청이 기획재정부에 추천을 하여 지정을 받는다. 기획재정부는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 및 해제를 매년 분기마다 하는데, 가장 최근인 2020년 12월 31일 현재 지정기부금 단체는 5,597곳이다. 그밖에 인허가 등에 따라 자동으로 지정되는 종교법인(1만9000개), 사회복지법인(2,413개), 의료법인(1,023개), 학술·장학법인(2,514개), 교육법인(1,673개) 등 3만여 개에 달한다.

세제지원을 받는 기부금 단체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별로 까다롭지 않다. 요건 확인도 형식적이고, 단체 지정 및 해제를 위한 별도의 위원회나 회의체는 없다.

게다가 지정기부금 단체는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인가나 허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인허가 조건이 곧 기부금 세제지원 조건이 되는 셈이다.


지정기부금 단체 요건의 사후 검증기관은 국세청이다. 기부금 모금 및 활용실적, 재무신고 내역 등을 점검해 지정취소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지정취소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도 기재부가 지정하는 지정기부금 단체(5,597개)에 한정된 내용이다. 기관의 인허가에 따라 자동으로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는 3만 여개는 국세청의 검증대상에서 비껴나 있다. 기재부가 지정하는 단체들은 매년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실적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국세청에 구체적인 명세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자동지정 단체들은 공시의무가 없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손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재정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부문화 확산은 꼭 필요한 일이다. 종교단체 등이 거둔 기부금 등으로 소외된 이들을 돕는 선한 일들이 그 예가 된다. 국가가 세금으로 찾아가는 데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더 급한 곳으로 갈 수도 있기에 그렇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자발적인 기부행위의 확산 노력은 훨씬 더 필요한 셈이다.


현행법상 법정기부금 단체만 기부금 전액을 소득공제해 주고, 나머지 지정기부금 단체에 대해선 소득의 최대 30%까지만 공제해 준다. 때문에 원하는 단체에 통 큰 기부를 하기가 어렵고, 기부도 주로 개인이 거액을 희사하는 선진국과 달리 기업들이 회사 돈으로 특정단체에만 기부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개인들의 고액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세제지원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고 기부방식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미국에선 부동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기부자는 운영수익의 일부를 연금형태로 받는 제도도 활성화되어 있다.

김범수 의장이 어떤 사회적 문제해결에 기부금을 쓸 것인지 주목된다. 카카오 측에 따르면 구체적인 문제해결 대상과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벌써부터 유망 스타트업들을 육성해 국부의 파이를 키우는 데 써야 한다거나,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써야 한다는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봉진 의장은 2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부방법을 몰라 처음엔 제 취지에 맞게 돈을 써줄 재단을 세울 생각을 했는데 설립 요건과 절차가 무척 까다로웠다. 재산을 은닉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왔다. 그래서 바로 접었다”고 말했다. 우리 현실을 스스로 체득했던 만큼 ‘교육·문화예술 지원’에 어떻게 쓰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인지 그 역시 고민할 것이다.


이제 정부도 이들의 기부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들 힘들 때 돈 많이 벌었으니 내놔라’라는 식의 이익공유제 강요는 새로운 기부문화의 싹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 차제에 ‘고액기부를 했더니 오히려 세금만 두드려 맞았다’는 일이 없도록 기부와 관련한 불합리한 세제를 찾아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벤처 1세대인 두 기업인의 기부금 쾌척 뉴스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이들의 결단이 새로운 기부문화가 자리 잡는 기폭제가 됨으로써 제2, 제3의 통 큰 기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master@intn.co.kr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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