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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 규제 혁신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
[국세칼럼] 규제 혁신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1.05.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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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본지 논설위원)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이국땅에서 국산 자동차를 만나 가슴이 찡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터다. 그때 반가움과 대견함에 뿌듯해하다가 더는 없을까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난다. 
폐허가 된 국토에서 미국원조에 의지하던 세계 최빈국이 기적과도 같이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수출 규모는 5180억 달러로 세계 7위에 올라있다. 지구상에 우리의 경제활동 범위도 무한정 넓어졌다. 이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우리 국민이 노력한 결실이다. 여기에 기업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미국 경제잡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은 14곳이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전년보다 2곳이 줄어들었고 신규 진입은 없었다. 그나마 100위 이내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2곳 뿐이었다. 포천은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이 11% 가까이 줄고 수익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며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 4계단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포천은 매년 세계 주요기업들의 매출액 등을 분석해 ‘글로벌 500대 기업’을 발표하고 있는데 여기에 선정된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 뿐 아니라 투자·연구개발 능력 등에서 글로벌 간판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국가경쟁력도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순위에서는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국은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올해 124개 기업(홍콩 포함)이 순위에 오르며 미국(121개)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포천 측은 “지난 30년간 무역증가에 힘입어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바야흐로 주요국들은 제조업 패권을 놓고 필사적 경쟁을 펼치고 있다. 총칼을 들고 땅을 뺏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든 부처의 지출에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기준이 지켜지는지 살펴볼 것을 지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보다 정교하며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에 나선 데 이어 백악관으로 반도체 업체들을 직접 부른 것은 중국 견제를 넘어 제조업 부활을 향한 공격적 전략이다. 

반도체 선두주자 인텔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진출도 글로벌 시장의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 첨단 공정 지연 등으로 위기에 처한 인텔은 파운드리를 새 승부수로 택하며 200억 달러를 투자해 두 곳에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IBM을 연구개발 파트너로 삼고 아마존·구글·퀄컴·애플 등을 고객사로 확보할 것이라며 ‘거대 반도체 연합군’의 탄생을 예고했다. 중국 정부도 최근 8대 신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반도체에 180조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생산의 20%가 역내에서 이뤄지게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명운을 걸고 ‘산업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은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 대표 기업들은 다른 나라 기업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국가 대표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힘이 실려야 하는데 우리는 중소기업 지원만 강조할 뿐 대기업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기업의 성장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 경제정책의 불안정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노사 협력, 환경·산업안전 규제는 세계 최악 수준에 이르렀다. 경영진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이 즐비하여 CEO가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공장 가동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글로벌 산업 경쟁에서 핵심요인은 기업에 대한 규제 문제로 요약된다. 유·무형의 각종 사회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기술개발, 인력유치, 투자 활성화가 모두 이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기업규제 3법, 중대재해처벌법, 노조법 등을 입법해 기업 발목에 족쇄를 단단히 채웠다. 유통업의 경우 이미 관행처럼 굳어진 강제휴업도 더 확대하려 한다. 백화점과 아웃렛, 면세점도 휴업 대상에 포함하고 대규모 유통점포를 특정지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구역 설정까지 법제화하는 방안을 시도한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지역별로 물류창고를 설치해 판매·배송하는 경우 영업시간과 판매품목을 지역 소상공인과 협의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도 있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창의적인 서비스로 소비자들에게 더 빠른 배송과 질 좋은 서비스를 생각했는데, 전혀 이질적인 다른 사업자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면 과연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물론 세율은 나라마다 경제환경 등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유효세율이 25%인데 반해 경쟁사인 애플사는 15.6%, 인텔은 11.6%라면 어떤가. 대규모 시설투자가 관건인 반도체 산업에서 세금감면(시설투자세액공제율)이 한국은 3%, 미국은 40%라는 수치는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준조세 부담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2019년 부담한 준조세가 67조5900억원에 이른다. 같은 해의 법인세 72조1700억원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준조세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료, 폐기물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에 비자발적 기부금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 준조세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업의 부담능력에 비해 금액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준조세 때문에 부담스러워한다.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기금을 조성해 저소득층, 실직자, 비정규직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연대기금법과 대기업이 목표이윤을 초과하면 협력사인 중소기업과 나누도록하는 협력이익공유제가 대표적이다. 기업 자율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자율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점에 정부와 기업인이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시늉에 그쳐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 유럽은 반도체와 전기차 등 미래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규모 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총 500억 달러 규모의 지원과 함께 2024년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 투자에 대해 최대 40% 세금을 공제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지금의 2배인 20%까지 높인다는 목표로 설비투자액의 40%를 지원한다. 중국 역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 올리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배터리 등 다른 전략산업에서도 각국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아쉬운 점이 많다. 이제야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나서는 등 한발 늦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그렇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력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분야로 저성장을 극복하는 열쇠일 뿐 아니라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원이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에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기업들이 치열한 글로벌 산업 전장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혁신을 제약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특히 ‘3% 룰’을 비롯한 기업규제 3법 등 족쇄를 당장 풀어줘야 한다. 해외 경쟁 기업과 대등한 여건에서 싸울 수 있게 법인세 인하 등 세제 지원책과 준조세 축소도 서둘러야 한다. 노조에 기울어진 노조법도 하루빨리 수술대에 올려놓아야 한다. 산업을 옥죄는 현실을 외면하면 우리 기업들은 머지않아 글로벌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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