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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칼럼] 내년 92조 적자예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국세 칼럼] 내년 92조 적자예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 승인 2023.09.0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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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를 열어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지출 증가율을 2.8%로 묶어,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 증가율(8.9%)보다는 한참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역대 최고급 세수 감소로 재정적자 92조 원에 나랏빚은 1200조원에 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9%까지 불어난다는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인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뺀 것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는 건전 재정 유지를 위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는 ‘재정 준칙’을 발의,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내년 예산안에서 스스로 만든 재정 준칙을 어기는 모순을 보인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3% 초과가 불가피하지만 2025년 이후부터는 재정 준칙을 준수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도록 관리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균형재정을 이루려면 필요한 곳을 중심으로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이에 부족한 재정을 보강하려고 과감한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한 게 이목을 끈다. 정부가 내놓은 긴축재정은 지난해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이대로 가다간 국가재정이 거덜 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재정 만능주의와 과감한 선 긋기를 시도한 것이다. 

정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원칙을 어긴 점에는 변함이 없다. 수년간 돈을 푸는 데 익숙했던 정부가 정권이 바뀐다고 그 습성을 단박에 바꾸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재정 준칙의 추진 동력을 크게 약화한 것이 틀림없다.


□ 긴축 기조에도 SOC 예산은 4.6% 늘어…선거 표심을 의식한 것 아닌가

전반적인 긴축 기조 속에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보다 4.6% 늘어났다. 수도권은 인천발(發) KTX 건설과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조기 개통 사업,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대구는 도시철도 엑스코선, 대전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등 지역의 숙원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해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은 충남의 서산공항 사업까지 포함됐다. 

문제는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 매표(買票) 예산을 배격했다”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7개월여 남은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국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입되는 예산은 올해보다 4.6% 늘어나는데, 이는 작년에 비해 올해 10.7% 줄었던 SOC 예산이 선거가 있는 해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SOC 예산을 선거와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예산안 당정 협의 직후에 지역 SOC 사업이 무더기로 공개된 것으로 볼 때 총선용 예산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 SOC 사업에 기대는 일은 과거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토목 위주의 SOC에 부정적이던 문재인 정부도 ‘생활 SOC’이라고 이름을 바꿔 도서관 등 지역에 재정을 투입했다. 막판에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해 예산을 수조 원이나 늘렸다. 하지만 과거 정부의 구태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건전 재정을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답게 정부·여당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이미 수십조 원의 추경을 공언한 야당의 무리한 확대재정 요구와 지역구 민원을 들이대는 여야의 ‘쪽지예산’을 방어할 수 있다. 향후 국회 심의에서 무리한 SOC 사업들은 철저하게 걸러져야 한다.


□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내년 예산안 곳곳에는 정부 나름대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고민이 묻어난다. 저소득층 생계급여가 사상 최대 폭인 21만3000원 인상되고 노인 일자리도 올해 88만3000개에서 103만 개로 늘어난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을 봐도 242조9000억 원으로 7.5%나 늘었다. 

하지만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16.6% 삭감됐다. 세수 부진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자 당장 급하지 않은 R&D 예산을 칼질해 더 급하다고 여겨지는 곳에 나눠준 모양새다. 

‘외교·통일’ 분야가 19.5%,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7.5% 늘어나는 등 12대 예산 분야 대부분이 늘어난 가운데 R&D 분야만 두 자릿수의 삭감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부 총 지출 대비 R&D 투자규모는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3% 대로 떨어지게 됐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지난 6월 28일 윤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을 때부터 예고됐던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R&D 예산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과학기술예산을 ‘나눠 먹기’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회계를 보면 기업이 보이고 예산을 보면 정부가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R&D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이 참에 과학기술혁신 시스템과 관련한 해묵은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혁신의 방향, 혁신의 방법이 얼마나 잘 먹힐까 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우리 경제의 먹구름은 오히려 짙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4%로 전망했다. 경제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성장률 2% 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저성장 장기화 우려를 높이면서 미래 성장동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꺼져가는 성장동력을 재점화하려면 초격차 기술 확보 등에 재정을 투입하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고강도 긴축 예산으로 아낀 돈은 성장동력에 집중적으로 투자돼야 한다. 반드시 써야 할 곳에 제대로, 과감하게 예산이 집행된다면 이는 마중물이 되어 새로운 도약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줄이는 것은 더욱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정부 예산안 희석 차단하고, 국가재정법은 통과시켜야 

‘2024년도 예산안’은 이달 초 국회에 제출된다. 이어 국회 각 상임위원회 또는 예산결산특위 감액·증액 심사를 거쳐 오는 12월 확정된다. 이 과정에 여야 간 정치적 빅딜이나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을 반영하는 ‘쪽지예산’ 혹은 ‘끼워 넣기 예산’ 식의 행태가 재연될 수 있다. 

국회 심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나서면 이런 예산이 더 늘어날 소지가 다분하다. 이들 사업은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예비타당성을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세금만 축내는 현금성 살포나 선심성 사업을 솎아내야 한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예산안이 국회를 거치는 동안 희석될 가능성도 차단해야 한다. 특히 내년엔 총선 일정이 잡혀 있어 이 같은 지역구 예산 챙기기 행태가 극심할 개연성이 높다.

한편 국회에서 국가재정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법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해외 기관들이 재정준칙 도입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힘을 얻고 있는 법안이다. 더구나 OECD 국가 가운데 재정준칙을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 뿐이라는 점도 확실한 명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안 처리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여야가 일제히 총선모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 불황 속 긴축은 ‘선택과 집중’ 확실히 해야

지난 정부에서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채무가 400조원이나 늘면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흔들리고 민간 경제의 활력이 저하된 것이 사실이다. 국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최후의 보루는 재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 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라고 밝혔다. 긴축을 통해서라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각오는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 경제가 1%대 초반의 저성장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긴축이 경기 회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완전히 떨쳐내기도 쉽지는 않다. 따라서 아무리 정부 씀씀이를 최소화해도 불황으로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은 지켜가기 어렵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복지 예산이 증액됐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예산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이 과감한 산업 지원으로 경제 전쟁에 임하고 있는 현실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재정이 저성장을 타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회 심의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더욱 확실해지기를 기대한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 경영학박사 
• 수필가   
•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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