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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칼럼] 해고된 근로자에게 세금을 선물로 안기다니!
[국세 칼럼] 해고된 근로자에게 세금을 선물로 안기다니!
  • 김진웅 세무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3.12.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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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이야기이다.

갑(甲)은 미국회사 한국지점에 성실하게 근무해 임원에 올랐다. 남 보기에는 걱정이 없을 사람이었다.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사무실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려고 하니 먹통이었다. 잠시 후에 보안요원과 인사담당이 들어오더니 바로 짐을 싸서 나가란다.

정오를 기산점으로 해고되었다는 거다. 컴퓨터에 개인 정보도 들어있다고 하니 원래 업무용 PC이므로 다시 접속할 수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 정보의 보호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작 자신이 당하고 보니 머리 속이 하얘졌다. 

라면 상자에 개인용품들을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서려니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누구와 마주칠까 싶어 고개가 푹 숙여졌다. 한참 일할 낮에 라면 상자를 들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오긴 하였는데 막상 갈 곳이 없다. 이런 회사를 위해 결원된 직원 일까지 일부 떠안고 시간외 근무와 야근을 밥 먹듯 해온 자신이 한심했다. 집에 들어가자니 집을 지키는 아내에게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리 외국회사들이 삭막하다 해도 일반적으로 퇴임은 시간을 가지고 미리 이야기가 오고 가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갑의 경우 같은 전광석화식 해고 사례도 실화다. 회사가 무언가 불편한 게 있을 때에는 특히 미국계 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해고가 쉽다 보니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내일도 저 자리가 내 자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갑자기 짐을 싸 들고 나온 뒤 갑은 부당해고이므로 회사를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다. 예상대로 인용판정을 받았다. 부당해고라고 본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가 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다. 재심신청도 기각됐다. 부당해고라는 거였다. 이제 복직이 될까 하는 갑의 기대는 깨졌다. 회사는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쯤 되면 복직이 될까? 아니었다. 회사는 끈질겼다. 고등법원에 다시 항소했다. 

갑은 슬슬 초조해지면서 불안해져 갔다. 회사는 해고를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게 확실하다. 대형 법률회사를 고용한 다국적기업이 무력한 실업자에게 작정하고 덤벼드는데 갑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으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노동위원회나 행정법원도 자기 편에 서주었지만 고등법원이나 대법원도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서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2심이나 3심에서 패소라도 하는 날이면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하는데 보통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급증했다.

그러던 차에 항소심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들에게 화해를 권했다. 회사가 해고취소를 하지 않을 거면 해고된 근로자에게 적절히 보상을 해주고 근로자도 얼마간 보상이 되니 그만 소송을 끝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결국 갑은 합의를 하고 말았다. 패소의 두려움과 당장 눈 앞의 화해금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화해는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회사는 합의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꼼꼼한 조건들이 들어 있었다. 향후 소송, 이의제기, 혹은 회사에 불이익 되는 이야기를 일체 밖에 하지 않아야 하고, 외부에는 합의내용도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체의 분쟁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회사는 갑에게 합의금을 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입금된 합의금이 얼마간 비었다. 회사에 알아보니 세금을 떼었단다. 합의금이 사례금이라서 기타소득세 원천징수를 하고 나머지 금액을 입금시킨 것이라고 했다. 갑은 사례금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를 부당해고하고 나서 해고가 확정되니 그리도 감사하다는 거냐? 해고된 직원은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노동위원회 재심신청이나 행정소송 1심과 2심을 제기한 측은 회사였다. 부당해고(경제적 손실)도 스트레스가 큰데 쟁송으로 배가된 정신적 고통(위자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갑의 정신적, 경제적 손실에 턱 없이 못 미치는 합의금을 주어도 되니 감사할 만도 하겠구나. 치열하게 법리공방을 하고 받은 분쟁합의금이 식당 팁도 아닐진대 감사의 뜻으로 주는 사례금이라니 인식의 부조화가 다가왔다. 가슴 속 저 아래에서 화가 솟아올랐다. 불행의 대가에 세금을 떼다니.

세무서에 찾아가 상담했더니 부당해고분쟁 중 해고된 근로자가 받은 화해합의금은 사례금으로 보아 과세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갑으로서는 직장을 잃고, 가장으로서 자존감도 잃고,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이 너무나 명백한데 이러한 불행에 대한 손해의 일부 보전이 소득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당해고를 하고 소송까지 걸어 근로자를 괴롭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합의금에도 세금을 매긴다는 건대 국가가 해고된 근로자를 대하는 방식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갑에게는 직업상실의 피해와 소송비용과 부당해고에 따른 소송으로 정신적 고통이 1000인데 합의금은 고작 100이다. 손실의 일부를 돌려받은 것이어서 9900이 결손금이 남아있는데 어찌 10에 대해 세금고지서를 보낼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세무서에 불복했다. 기각결정을 내리면서 그 이유를 ‘향후 일체의 분쟁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갑에게 회사가 고마워서 주는 돈이므로 이는 기타소득(사례금)이 맞습니다’라는 취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을 준 회사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운 놈 쫓아내고 더 이상 소송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감사하겠지. 그러나 세금은 돈을 받은 갑이 내는 것이다. 납세의무자를 기준으로 사례금인지 여부를 판단해야지 돈을 준 상대방의 기분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해고근로자가 소송 파파라치로 변신해 회사의 이런 저런 구린 데를 들어 회사와 자기를 해고한 임직원들을 모두 고발했는데 모든 고소와 신고를 취하하고 앞으로 회사가 조용히 좀 살게 해달라고 화해금을 지급한 경우 그 건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급한 것이지 감사한 마음으로 지급한 금원이 아니므로 사례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착한 갑은 과세이고 파파라치는 비과세가 되어야 하는 거다.

그러나 세무서 불복담당 직원은 갑도 사례금이고 파파라치도 사례금이라고 단언했다. 세무서는 주는 사람이 실제로 감사하지 않아도 사례금으로 본다는 것이다. 관행적으로 분쟁합의금 = 사례금으로 공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아니 조세법률주의인데 법 문언에 충실해야지 이래도 저래도 과세라니!

불복을 대리한 세무사의 말인즉 사례금 과세야말로 이현령 비현령 과세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녹피에 가로왈이어서 불복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법을 해석할 때는 기본적으로 문언주의에 충실해야 하는데 과세관청이 문리해석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례금에 대한 소득세법상 정의규정이 없으므로 당연히 일반적인 문언의 뜻에 충실하게 감사한 뜻을 전하는 금원으로 한정해야 하는데 패소 가능성 때문에 분쟁합의금을 수수하고 분쟁을 종결하는 것을 굳이 사례금으로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소득세법에는 사례금의 의미에 관한 정의 규정이 없으므로 사회적 통념에 따라 분쟁해결금으로서의 화해금이 ‘사례금’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사전적으로 사례란 따뜻한 말이나 선물 따위로 상대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내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도 이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치열한 법적 공방과정에서 서로의 권리의무를 방어하고자 패소의 위험을 줄이고자 전략적으로 절충한 결과가 화해절차인데 일방이 상대방에게 지급하는 화해금(합의금)을 고마운 뜻의 표현으로 지급하는 선물 등이라 보는 것은 그 언어의 가능한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고, 특히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을 불허하는 조세법규의 엄격한 해석상 받아들일 수 없다.” (2015년 정세영 판사)  

다행스럽게도 ‘분쟁 화해금이나 분쟁합의금=사례금’으로 공식화돼 있는 세무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대법원 판례 두 건이 작년에 나왔다. 회사에서 해고되어 부당해고 취소소송을 한 임원들이 소송 중 갑처럼 재판부의 화해를 수용하고 받은 화해금은 사례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화해금은 소득세법에 열거되어 있지 아니한데 그 걸 왜 사례금이라 하여 과세하느냐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사례금이란 “사무처리 또는 역무의 제공 등과 관련하여 사례의 뜻으로 지급되는 금품”이라는 정의를 이 번에는 문언주의에 입각하여 제대로 적용한 것이다. 해고된 근로자 입장에서는 회사에 일정한 사무를 처리하거나 역무를 제공해야 사례를 받을 수 있는데 해고를 다투는 일은 자신의 방어행위이지 상대방을 위한 사무처리나 역무의 제공에 해당하지 않는다. 

기실 사례란 우호적인 사이에 감사의 뜻으로 오고가는 금품이지 일방이 해고를 하고 해고된 근로자는 이에 소송을 하면서 패소 걱정으로 합의에 응한 해고근로자가 받은 합의금에까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사례금이라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 해석의 기본인 문리해석원칙에도 부합하지만 분쟁 약자인 해고근로자에게는 더욱 부합한다.

필자도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이다. 불행한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사례금도 문언 그대로 평범하게 법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해고된 사람이 받은 분쟁 합의금을 굳이 사례금이라 칭하며 세금을 거두어간들 그리 큰 세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세금에도 정이 있고, 눈물도 있고, 상식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이제 과세관청은 대법원 판결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김진웅 세무사
김진웅 세무사

 

•(사)한국조세연구포럼 등 다수 학술단체 회원, 감사, 분과위원장, 이사 역임 
•베르나바이오텍포리아(주) 등 다수 국내외기업 감사 및 사외이사 역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중소기업중앙회 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국세공무원 강의 및 명예교수 역임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A, Tax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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