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과 건강보험 함께 강화해야 노후빈곤 해소에 효과
노후소득 보장강화 차원에서 정치권 합의대로 국민연금 급여율(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더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확대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떨어지고 고령화로 노인진료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소득대체율을 올려 노후에 국민연금을 더 받더라도 그렇게 받은 연금수령액의 많은 부분을 노후 질병치료비나 건강관리비로 지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함께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양대 축을 이루는 기초연금의 사용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초연금은 기존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해 세금을 재원으로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 월 최대 20만원(해마다 물가상승률 반영해 인상)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공적부조의 사회안전망이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국민연금연구원과 한국조세연구원이 지난해 11월 4~21일 기초연금 수급자 500명을 상대로 사용실태 설문조사한 결과로는 응답자의 44.2%가 기초연금을 '보건의료비'에 지출했다. 기초연금 수급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노인이 애초 취지와 다소 어긋나는 용도로 기초연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각한 노후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돕고자 기초연금을 도입했다고 정부가 소개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초연금 수령 후 가장 큰 변화로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55.0%)를 가장 많이 꼽았다.
기초연금을 보건의료비에 사용한다는 대답은 여성(48.7%)이 남성(36.3%)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80대 이상(72.3%)이 70대(49.3%)와 60대(35.8%)보다 보건의료비로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 기초연금의 기본 용처라 할 수 있는 '식대'에 사용한다는 대답은 30.2%에 그쳤다. 15.8%는 '주거비'로 쓴다고 답했다.
이처럼 노인이 공적연금을 안정된 노후생활 유지보다 보건의료 영역에 쓰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많아지는 데다 우리나라 의료보장 수준이 여전히 낮은 탓이다.
실제로 건강보험료는 거의 해마다 오르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전체 의료비중에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보장률은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08년 62.6%에서 2012년 62.5%로 떨어진 데 이어 2013년말 현재 62.5%에 머물렀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건강보험공단 발표 보장률은 62.0%였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55.0%로 추락했다. OECD 평균 74.9%보다 훨씬 낮다. 입원치료만 놓고 봐도 OECD 평균 보장률은 85.8%이지만, 우리나라는 59.8%에 그쳤다. 외래(치과 제외) 진료는 OECD 평균이 76.7%이지만, 우리나라는 57.7%밖에 되지 않았다.
국민 부담은 해마다 늘지만, 보건의료 서비스는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사람은 해마다 줄지만,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경제적 이유'로 병원에 못 간다고 호소하는 비율은 오히려 늘고 있다.
돈이 없어 병원을 못 가는 현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비(非)수급 빈곤층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수급 빈곤층은 소득수준은 최저생계비보다 낮지만, 부양해줄 가족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빈곤계층을 말한다.
인권위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의료와 교육, 난방 측면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보다 오히려 더 열악한 처지에 있었다. 최근 1년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수급 빈곤층은 36.8%에 달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22.2%에 그친 점과 대비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정체한 상황에서 비급여 진료비와 법정본인부담금 등 환자 부담 탓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빈곤환자가 많은 것이다.
문제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앞으로 노인진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2011년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11.0%(2010년)에서 24.3%(2030년), 40.1%(2060년) 등으로 갈수록 커진다. 반대로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72.8%(2010년)에서 63.1%(2030년), 49.7%(2060년) 등으로 줄어든다.
이런 인구비율변화에 따라 노인 의료비 비중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4년도 65세 이상 건강보험 노인진료비 현황'을 보면 전 국민의 11.9%(601만명)에 해당하는 65세 이상 노인의 2013년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35.5%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12%에 조금 못 미치는 노인의 진료비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2020년에는 노인진료비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45.6%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75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가 많이 증가한 때문으로, 노인진료비는 현재 50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층에 편입되면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 진료비 급증은 건강보험재정에 감당하지 못할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수입지출 구조변화와 대응방안(2012년)'을 보면, 노인의료비의 급등으로 건강보험재정은 장기적으로 적자행진을 한다. 적자규모는 2020년 6조3천억원에서 2030년 28조원, 2040년 64조5천억원, 2050년 102조1천700억원에 이어 2060년에는 13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3년 건강보험의 총 지출규모가 38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적자금액이 천문학적이다.
한 연금 전문가는 "고령화로 노인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의료 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아무리 연금급여액을 올려도 보건의료비로 쓰기에 안정된 노후생활에 직접적 보탬이 안된다"며 "노후보장 차원에서 국민연금뿐 아니라 건강보험 등 다른 사회보장장치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