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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砲音]'사대주의'와 '균형외교'
[세종砲音]'사대주의'와 '균형외교'
  • 日刊 NTN
  • 승인 2015.09.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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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경북매일 서울본부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도무지 `외교`의 가치를 모르는 왕과 조정의 `우물 안 개구리식` 국정운영이 빚어낸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역사다. 조선의 통치철학을 뒷받침한 주자학이 갖는 철학적 가치는 논외로 치더라도 대국(大國)을 섬기는데 있어서 효(孝)의 개념에 근거한 충성을 미덕으로 삼았다는 것은 돌아보면 치욕스럽다. 어엿한 `국가`로서 존재한 조선이 왜 그렇게 무참히 외세에 굴종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많은 논점을 남긴다.

통신사 일행으로 왜국(倭國)의 정정(政情)을 살피고 돌아온 신료들이 당파싸움에 찌들어 정반대의 보고를 각각 올려 갈팡질팡하다가 당한 임진왜란의 참극은 흔히 아는 비통의 역사다. 그런 호된 참화를 겪고도 조선은 병자호란을 피하지 못했다. 대륙의 정세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커녕 친명(親明)과 친청(親淸)으로 갈려 어느 나라를 `어버이 나라`로 섬길 것인가 창피스런 논쟁에 골몰했던 지도층의 갈등은 되돌아볼수록 어이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두고 `사대주의` 운운한 산케이신문의 보도는 일본이 얼마나 배알이 꼴려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케이신문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라는 기자는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노구치는 이 글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관에 대해 “사대주의 DNA를 계승해 발휘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지는 노구치의 글은 패악스럽기 그지없다. `민비`라는 비하조의 고유명사를 동원해 명성황후가 겪은 비운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박 대통령의 불운을 암시하는 무례하고 야비한 논리를 펼쳤다.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으로 제일 먼저 사대주의를 거론하며 개혁을 모색했다고 상기하면서 박 대통령이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간다는 투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산케이신문 내에서도 대표적인 강경 우익보수로 꼽히는 기자로 알려져 있는 노구치는 주로 한국과 중국 등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는 국가에 대해 뒤틀린 논조의 칼럼을 자주 싣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

유로 노구치의 망발을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결코 간단치 않다. 일본이라는 이웃나라에 노구치의 궤변에 공감하는 다수의 독자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언론이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며 희롱하는 논설을 펼치는 행위는 치가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망발 망언 뒤에는 분명히 어떤 불순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해 전범국으로 전락한 일본이야말로 미국을 향한 철두철미한 `사대주의`적 굴종으로 국가를 부흥시키지 않았던가.

지정학적인 이유, 제대로 된 개화의 길을 가지 못해 겪어야 했던 약소국으로서의 비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또다시 삼천리강산이 초토화되는 비운…이 모든 것을 딛고 자랑스럽게 일어선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 번창하기 위한 정치외교의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멀리하고 대한민국을 가까이하려는 그 이유는 노구치의 망상처럼 또 다시 부모나라가 되고 싶어서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달라진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근거한다.

우리는 더욱 더 철저한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길을 가야 한다. 그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개의치 말고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대국들을 업고 벌이는 소아병적인 `사대주의`는 없어야 한다. 당쟁의 연장선상에서 반미(反美)나 반중(反中)의식을 민족주의로 포장해 반목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안재휘 경북매일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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