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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관리자가 관리자 행세를 못한다면…
[칼럼] 관리자가 관리자 행세를 못한다면…
  • lmh
  • 승인 2007.05.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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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칼럼] 심재형 (NTN 주필)
   
 
 
10여 년 전 어느 봉제회사 창고에 큰 불이 나 창고 안에 쌓아 두었던 의류 수천 벌이 소실(燒失)된다. 손실액이 당시 화폐가치로 10여억 원이 넘는 큰 화재였다. 당연히 그 중소기업은 화재 손실액을 계상, 법인세 신고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관할 세무서는 손실액을 전액 부인, 법인세를 고지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그 기업 사장, 헐레벌떡 관할 세무서를 찾아 갔지만 그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동서의 간부진이다. 말단 직원의 법인세결의서가 아무런 검증 없이 주무→ 과장→ 서장의 전 결제라인을 무사통과 그대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 왜 앉아 있나

이정도 손실규모라면 아무리 ‘남의 일’이라 해도 한번쯤 챙겨 볼만도 했는데 결제라인에 있는 모든 관리자들이 눈 감고 도장만 꾹꾹 눌렀다는 얘기가 된다.

최소한의 양식 있는 간부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던들 결제 단계에서 당연히 걸러졌을 사안이다. 당시 담당 과장의 말은 더욱 가관이다. 직원의 판단을 믿었노라고―. 이 건은 그 후 불복청구를 통해 해결됐음은 물론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관리자들이 그 자리에 왜 앉아 있었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요즘도 사정은 다르지만 조직 상· 하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과거의 안일한 케이스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관리자들이 공적(公的)인 일에 부하 직원들의 눈치를 너무 살피는 경우다. 행여 오해(?)를 살만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 같다. 이러한 기류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 세무인들이 느끼는 공통된 아쉬움이기도 하다.

조력(助力)을 구하는 고객(납세자) 요청에 의해 관서를 방문할 경우 ‘청탁’과 ‘청원’을 구분치 못하는 관리자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납세기업에 억울함이 없도록 ‘세심한 검토’를 해 달라는 정중한 요청마저도 “요즘 직원들 어디 말 듣습니까”로 대화를 자른다는 얘기다. 실은 청탁이 아닌데도 말이다.

소임 회피는 분명한 직무유기

이렇듯 관리자들이 부하직원 두려워 소신(所信) 피력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면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조사파트 내에서 관리자들의 조심성이 유별난 것 같다.

조직 내의 ‘이상한 기류’가 관리자들의 운신을 좁힌다는 고뇌에 찬 얘기도 들린다. 오뉴월에도 오금을 시리게 한다는 세무조사는 말 그대로 사업자들에겐 위협적인 존재다. 여차할 경우 기업의 기둥뿌리 빠지는 게 바로 세무조사다.

한마디로 기업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우리네 납세환경 상 아직은 국세행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납세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표현을 좀 과장 한다면 조사행정의 손길만 스쳐도 먼지가 털리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라고 세무조사를 당하는 납세자들은 일단 생사기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기 마련이다. 지연(地緣)이나 학연(學緣) 등 모든 연(緣)을 총동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논리의 정당성 관철을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 수단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사적인 연(緣)에 좌지우지될 당국도 아니지만 조사파트 관리자들에게 특단의 ‘조정력’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세정의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세원(稅源) 말살을 막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일이야 말로 관리자들의 몫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법(法) 대로’ 보다는 법의 운영이 중요하다.

윗사람 꼬투리 잡는 기류도 문제

그런데 이런 역할을 자임해야 할 관리자들이 뒷짐을 쥐고 있다면 결국 그 피해는 납세자들에게 돌아간다. 더구나 국세청 조사조직은 국세행정의 권위를 담보하는 최정예 부대이다.

소속 관리자들의 소신과 철학이 뒤따라 주지 않는다면 본의 아닌 ‘세정 폭력’으로 변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있었던 수도권 지방청에서의 일은 씁쓸한 긴 여운을 남긴다.

모름지기 공직자들은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공평무사(公平無私)가 생명이다. 하지만 윗사람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밖으로 까발리는 조직, 또 이것이 ‘작품’(?)이 되는 조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과연 이런 기류 속에서 어느 관리자인들 소신을 펼칠 수 있을까. 국세청 수뇌부들이 깊이 고심해야 할 새로운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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