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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자유와 선진국 지수”
“선택의 자유와 선진국 지수”
  • jcy
  • 승인 2007.06.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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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稅政칼럼] 김진웅 논설위원
   
 
  ▲ 김진웅 본지 논설위원  
 
아이 손님이 제일 어렵다. 친척 집에 온 아이를 열심히 대접하고 맛난 음식을 많이 챙겨주었는데 나중에 돌아가서는 대접이 별로였다는 후문이 들린다. 알고 보니 자장면을 안 사주어서 그렇단다.

그러나 아무리 인기 있는 자장면도 어쩌다이지 매일 먹으라면 참아낼 짓이 못된다. 먹는 이야기로는 어쩌다 외국 양식당에 피치 못하게 가면 영어도 짧은 한국인들은 진 땀이 난다.

드레싱은 무엇으로 할까요? 스프는요? 와인은요? 서양 음식은 도대체 묻는 게 왜 그리 많고 선택하여야 할 게 왜 그리도 많은 건지 모른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식당에 가면 눈치껏 선택의 자유를 포기한다. 다른 이가 시키는 것을 우르르 따라서 시킨다. 머리 스타일도, 화장도, 복장도, 심지어는 라이프 스타일과 생각조차 남과 다르면 살기가 팍팍해진다. 튀면 정 맞으니까!

이런 우리에 대하여 서양인들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동양인을 묘사해보라고 하니 근면, 일 벌레, 인내심, 복종, 수직적 인간관계, 전제군주, 독재, 몰개성, 획일성, 집단성 등을 주요 키워드로 선택하더란다. 우리는 과연 이런 단어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다고 온전히 부인할 수 있을까? 개성, 개인 존중, 창의력, 독창성, 독립, 민주성 등과는 대칭되는 개념들이 동양인을 규정하는 단어들이라니 섭섭하다.

그러고 보니 앞서 신군부 시절 주한미군사령관이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 사람들은 들쥐 떼를 닮았다’고 하여 한국인들이 발끈한 적이 있다. 이는 당시 신군부가 뜨는 조짐이 보이자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우르르 신군부로 쏠리는 것을 보고 일갈한 말이다.

사실 우리는 유교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정이건, 형제건 철저히 서열 속에 산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 전체가 수직적이다. 형제가 싸우면 한국의 부모는 ‘동생이 형에게 덤비면 못써!’라고 타이른다.

누가 잘못했는지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형과 싸운 동생은 부모로부터 어려서부터 힘있는 자에게는 정오를 가리지 말고 덤비지 말라는 맹종의 철학을 배우는 셈이다. 혹시 동양의 수많은 독재와 쿠데타들이 성공한 배경에는 이런 동양적 맹종 덕성 교육이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아닐까?

단일 반복성에 대한 인내력 인자가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별로 없다. 같은 것에 집착하거나 반복하는 사람은 자폐아나 편집증 환자들뿐이다. 건강한 이는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한다.

선택의 기회가 많으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 비례관계이다. 따라서 선진국 지표 역시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넓은가에 달렸다. 실제로 유턴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나라도 있고, 군대는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나라도 있다. 기부금을 듬뿍 내면 자녀를 입학시켜주는 나라들도 있고 동성끼리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모두 선진국들의 이야기이다. 자유로운 선택은 풍요로운 삶 그 자체이다.

한국 학생이 미국 유학생활 중 경험한 실화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여러 대학들이 서로 학점을 인정해주는 학점 컨소시엄을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조지 워싱턴대학, 조지타운 대학, 아메리칸 대학 등 유수한 대학에서 좋은 교수님의 강의를 마음대로 골라 들었다.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 놓은 것이다.

반대로 교수들은 더욱 긴장하여야 한다. 강의가 신통치 않으면 학생들은 모두 다른 대학에 가서 그 과목을 들을 판이다. 교수는 고달파도 학생들에게는 최선의 강의를 들을 가질 기회를 기꺼이 제공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시험 때가 되었는데 대학간 시간이 중복된 것이다. 문제는 쉽게 풀렸다. 한 쪽 담당 교수가 학생이 편한 때 시험을 보도록 선선히 조치해주었다. 결국 다른 학생들은 1주일 후에 보는 시험을 외국인인 한국 학생이 미리 보게 되었다.

그 것도 빈 교실에서 혼자 시험지를 받았는데 교수는 질문이 있으면 옆에 있는 교수실로 오라고 이르고는 가버렸다. 다른 학생들에게 시험내용을 유출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주의조차 없었다. 선량한 일반 학생들이 어떻게 대접을 받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 선진국은 세무점검(세무조사)을 나올 때 조사관리자가 미리 납세자를 불러 들여서 서로 협의를 한다. 우리가 점검을 하러 나갈 터인데 언제 가면 좋겠나? 그리고 보고자 하는 서류는 이런 것들인데 준비가 가능한가? 이는 선생님이 시험을 보는데 학생들과 사전에 자세히 상의를 하여 시험시기와 시험범위를 가장 편리할 때로 정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시험을 본다. 정기세무조사는 선량한 납세자들이 정기적으로 받는 시험이다.

잘못이 있어 조사하는 범칙조사나 심층조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단순히 신고 성실도를 점검해 보는 작업일 뿐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굳이 불편할 때를 골라 시험을 치를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일반세무조사에서 이런 상담과정은 아직 없다. 우리 과세당국은 열흘 전에 조사예고통지를 납세자에게 해준다.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납세자 권익의 발전이기는 하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촉박한 통지에 난망해 한다.

기업은 앨빈 토플러가 말하듯 속도의 전쟁을 벌이는 가장 바쁜 곳이어서 몇 달간의 작업 일정이 꽉 차있게 마련인데 불과 열흘 후부터는 기업의 존망이 달린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통지가 오니 말이다. 물론 세무조사 연기 신청을 서면으로 할 수는 있으나 신청일 뿐이고 결과는 장담할 수가 없다.

연기신청의 사유가 지극히 거창하기 때문이다. 법에서는 ‘천재지변’을 들고 있다. 시행령에 가면 ‘화재나 기타 재해, 수사기관의 장부 압수’를 연기 사유로 들고 있다. 기업은 무한경쟁 중이다. 기업으로서는 천재지변보다 더 급박한 합병이나 상장을 준비 중이기도 하고, 한국이 IT 강국이므로 실험적으로 전산 시스템을 바꾸어 보는 민감한 파일러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은 모두 때를 놓치면 아니 되는 일들이다. 현실은 이러한데 천재지변 수준의 연기 사유 범위 안에서 연기를 논하게 되면 역시 한국은 기업하기가 팍팍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기업이 세무조사로 야반도주할 것도 아니라면 예고통지 기간을 충분히 주고 그 안에서 때를 정하라고 하든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연기사유를 대폭 현실화하여 법률 개정을 하고 사전 상담을 한다면 선량한 학생에게 시험도 편하게 보도록 하듯 우리 과세당국이 초일류세정을 시현한다고 칭송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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